수출 잘되면 경상흑자 늘지만 총투자 줄어도 흑자 나기 마련高성장기엔 투자율 높아 적자, 외환위기후 투자부진형 흑자로돈 남아도는데 투자 안 하는 건 이 땅에선 돈 벌기 힘들다는 뜻파티 멈추고 성장엔진 점검해야
허승호 논설위원
경상수지 흑자란 상품 및 서비스의 수출이 수입보다 많다는 뜻이다. 흑자를 내려면 중국 등 주요 수출시장의 경기가 좋아 우리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거나, 주력 수출상품의 대외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 물론 후자 쪽이 바람직하다. 반면 우울한 흑자도 있다. 국내 경기가 안 좋아 수입이 확 줄면 수출이 시원찮아도 흑자가 난다. ‘불황형 흑자’다. 환율이 올라도(원화 평가절하) 수출은 늘어난다.
하지만 거시경제학은 훨씬 시계(視界)가 길고, 낯설며, ‘직관적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을 가르친다. 얘기는 ‘저축=국내투자+순해외투자’라는 항등식(恒等式)에서 시작된다. 순해외투자(± 부호를 바꾸면 자본수지라 부른다)는 경상수지와 항상 같은 값이다. 경로는 이렇다. 먼저 대부자금시장에서 저축과 국내 투자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순해외투자(경상수지)가 산출되며, 이 같은 경상수지를 발생시키는 수준에서 환율의 균형이 이뤄진다. 단기 파고(波高) 차원에서는 환율이 수출입을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장기 수위(水位)의 시야에서는 저축과 국내 투자가 경상수지와 환율을 좌우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하던 1970∼90년대 내내 순해외투자(경상수지)가 적자였다. 당시 총생산 대비 저축률이 40%나 됐지만 국내 투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고 차액을 메우기 위해 온갖 형태로 외자(外資)를 들여왔던 것이다. 워낙 투자가 왕성해 경상적자가 지속됐던 것.
반면 지금은 돈이 나간다. 저축률이 30% 수준으로 낮아졌으나 투자율은 더 떨어져 국내에 돈이 남아돌아서다. 국내 투자가 안 돼 경상흑자 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1998년부터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무모한 투자’의 위험을 체감하면서 생긴 변화다.
투자를 덜 하는 이유는 뭘까. 돈이 없어서인가. ‘저축의 투자 초과’에서 보듯 돈은 많다. 단기 부동(浮動)자금도 700조 원이 넘는다. ‘투자의 비용’이라는 금리는 너무 낮은 수준이다. 질문에 대한 정답은 ‘돈 벌 만한 사업이 안 보여서’다. 기업은 돈 버는 집단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자신이 있으면 누가 뭐래도 투자한다. 대통령이나 세상사가 맘에 안 들어 투자 안 하는 일은 절대 없다.
투자수익이 안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동력이 약화됐다는 뜻이다. 이른바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돈엔 코가 없지만 ‘이윤의 냄새’를 맡는 후각만은 대단하다. 내자(內資)든 외자든 ‘여기서 돈 벌기 힘들다’는 판단이 서면 어느 샌가 국경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면 경상흑자가 시작된다.
이처럼 경상수지 흑자에 어두운 측면이 있다고 해서 “경상수지 적자로 가자”고 하면 안 된다. 외환위기 때 겪었듯 경상적자 누적은 나라를 결딴낼 수 있다. 무엇이 좋을까. 과거 한국의 적자나 일본의 흑자에서 보듯 적어도 국제수지의 문제에서는 우월한 그 무엇이 있는 게 아니다. 적정한 외환보유액과 대외지불능력을 확보한 수준에서 장기균형을 이루는 것이 최적이다. 다만 멈추지 않는 경상흑자 행진을 지켜보면서 ‘성장엔진에 발생한 문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흑자에 겨워 흥청망청 샴페인 마셔도 좋을 그런 한 해가 아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