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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정원수]파업 끝나면 불법도 없어지나

입력 | 2014-01-06 03:00:00

철도노조 파업 철회하자 법원 “도주 우려 없다” 영장기각
다음날 집행부 16명 자진출석




정원수·사회부

“철도노조 파업 정당합니다.”

경찰 수사에 불응하다 뒤늦게 자진 출석한 철도노조 집행부 중 한 명이 4일 오후 4시경 서울 시내 한 경찰서로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일부는 카메라 앞에서 웃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갑자기 자진 출석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역대 최장기 철도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집행부는 그동안 경찰의 추적을 피해 왔다. 지난해 12월 30일 파업 철회가 결정된 이후에도 수사기관의 조사에는 불응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철도노조 집행부의 자진 출석 전날인 3일 철도노조의 지부장급 간부 2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 두 곳의 법원에서 열렸다. 파업 철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법원은 “파업이 종료됐고,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하지 않으면 진상 파악에 방해를 받거나 도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공교롭게도 하루 뒤인 4일 오전 최은철 철도노조 사무처장 겸 대변인은 “수배 중인 노조 지도부가 자진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몇 시간 뒤 체포영장이 집행되지 않은 철도노조 집행부 22명 중 16명이 전국 각지에서 한꺼번에 자진 출석했다. 민주당사에 머물고 있는 최 대변인을 포함해 민노총에 있는 김명환 노조위원장과 서울 조계사에 머물고 있는 박태만 수석부위원장 등 파업을 주도한 핵심 3명은 자진 출석 대상에서 빠졌다.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철도파업을 철회시키려고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했던 게 아니라 철도파업 자체가 불법이어서 형사처벌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영장 발부 잣대가 법원마다 다르다는 뒷말도 나온다. 파업 철회가 결정되기 전에 검거된 대전과 경북 영주지역 지부장급 간부 2명에 대해선 영장이 발부됐기 때문이다. 파업 철회 이후에도 현장 복귀를 거부하던 간부들의 파업 가담 정도가 구속된 이들보다 덜하다고 볼 근거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파업이 끝나면 노조의 처벌 면제가 협상 대상이 되고, 결국 불법행위가 없었던 일처럼 넘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영장 기각과 집행부의 자진 출석이 그런 관행의 반복이 아니길 바란다.

정원수·사회부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