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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동양 피해’ 얼마나 사무쳤으면…

입력 | 2014-01-06 03:00:00

“靑에 호소” 40대女 새끼손가락 잘라… 봉합 거부한채 “대통령, 수사지시를”




4일 오후 6시경 서울 마포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순자 씨(49·여)는 초췌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 씨는 2일 오후 1시 30분경 청와대 앞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여자 화장실에서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 절반가량을 손도끼로 잘라냈다. 순간 피가 치솟는 것을 본 이 씨는 너무 놀랍고 무서웠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잘린 손가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경남 창원에 사는 이 씨는 “원금은 확실히 보장된다”는 담당 여직원의 전화를 받고 ㈜동양 채권에 1000만 원을 투자한 뒤 전액을 날릴 처지에 있다. 창원, 울산, 경남 진해 지역 피해자 대표인 그는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지난해 10월 초부터 전국을 돌아다녔다. 담당 직원의 말만 믿고 돈을 맡긴 시골 노인들을 찾아가 구제 절차를 설명해 주기도 하고 각 지역 피해자들을 모아 앞으로의 대책을 의논했다. 혼자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승용차에서 쪽잠을 자며 금융감독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이 씨는 2일 부직포로 만든 태극기 위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태극기에 자신의 손가락을 싼 뒤 흰 봉투에 넣어 피해자들의 탄원서와 함께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이 씨가 손가락을 잘랐다는 사실을 안 경찰이 그의 편지 봉투를 가져오게 해 결국 전달은 되지 않았다.

이 씨는 봉합 수술을 완강히 거부해 현재는 봉합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 씨의 잘린 손가락은 냉동실에 보관돼 있다. 그는 “퇴원 후 다시 손가락을 청와대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씨가 가장 속상한 것은 “수억 원도 아니고 기껏 1000만 원 잃은 것으로 왜 그러고 다니느냐”는 일부 주위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이다. 그는 “내가 모은 1000만 원은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어렵게 모은 돈이어서 나에게는 정말로 소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씨는 “동양의 부실 채권 피해자들 대부분은 직원들이 ‘원금 보장을 해준다’고 속여 돈을 잃게 된 사람들”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동양그룹 사태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라’는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동양그룹 사태와 관련해 피해 규모가 7343억 원에 이르는 1만9904건의 분쟁조정이 접수됐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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