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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연주자의 야시시한 드레스… 귀보다 눈이 먼저 열린다

입력 | 2014-01-07 03:00:00


맨어깨와 등이 강조된 드레스를 입은 미모의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왼쪽 사진)과 생기 충만한 연주만큼 파격적인 노출의 무대의상으로 유명한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 동아일보DB

초등학교 때다. 지금도 매우 존경받는, 베테랑 여성 첼리스트의 연주회에 갔다. 공연이 끝나고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저 아줌마는 왜 불편하게 어깨에 끈을 묶었어?”

어설프나마 바이올린을 배운 까닭인지 활질 하기에 거치적거려 보이는 드레스 끈이 자꾸 눈에 걸렸다. 힘차게 활을 그을 때마다 가느다란 흰색 끈이 어김없이 어깨 아래로 스윽 흘러내렸다. 연주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일 없는 듯 틈틈이 옷을 추슬렀다. 빈곤한 소양 탓이겠으나, 30여 년이 흐른 지금 기억에 또렷한 것은 그날의 연주가 아니라 분주했던 옷차림이다.

6개월 동안 클래식음악 담당기자 옆자리에 앉아있으면서 드문드문 소개되는 음반 재킷을 흘끔흘끔 구경했다. 눈길 한 번 더 머물게 만드는 대상은 아리따운 여성 연주자의 사진을 내건 음반이었다. 수준 낮은 문외한의 취향이라고 손가락질한다면 전혀 반박할 생각이 없다. 중학교 때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조피 무터(51)의 존재감을 먼저 알아챈 것도 내 귀가 아닌 눈이었으니까.

5년 전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34)의 첫 내한공연을 듣고 나오는 길에 생각했다. ‘현대의 클래식음악 연주자는 꼭 아름답거나, 아름다워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 치장해야만 하는 걸까.’ 관객의 환호에 연주 외의 무언가에 대한 몫이 덤으로 얹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미소녀가 아니라 우수 어린 눈동자를 가진 신장 187cm 미청년의 공연이기 때문이었겠지만.

한 선배와 연주자의 외모와 무대의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27)을 알게 됐다.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해보니 동그스름한 어깨와 매끈한 허벅지를 강조한 미니스커트 드레스 차림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볼륨을 높이지 않은 채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튜브 드레스의 움직임을 1분 정도 띄엄띄엄 돌려봤다.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취재를 위해 클래식음악 공연장을 찾아야 한다면 객석 중앙 맨 뒷자리에 앉아야겠구나.’ 나는 돌부처가 아니다. 앞쪽에 앉아서 유자 왕이나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7)의 맨 어깨와 종아리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들의 열정적인 연주에만 귀 기울일 자신, 한 톨도 없다.

얄팍한 경험의 기억 속에 가장 행복했던 클래식음악 연주회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의 2001년 내한공연이다. 3층 맨 뒷자리에서 새끼손톱만 한 크레머의 움직임을 보며 붙들었던 떨림의 기억을, 야시시한 드레스 치마폭에 묻어버리고 싶지 않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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