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동아일보-채널A 공동 연중기획]학원가-PC방서 만난 아이들
아이들의 밤거리는 ‘나쁜 말’로 얼룩졌다. 취재팀이 2일 밤 서울 강남구 성동구 용산구 일대의 학원가와 PC방에서 만난 아이들은 성별, 나이, 장소에 관계없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오후 9시 40분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한 버스정류장. 중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 5명이 스마트폰으로 온라인게임 ‘롤’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동안 이들은 “×발, 페이크 ○쩔(속임수 엄청나네)” “××발 진짜 잘해” 등 욕설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학생 중의 한 명인 조모 군은 “게임을 할 때나 화가 날 때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버릇이 돼서 그런지 이제는 욕을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
한 시간여 뒤, 또 다른 중학생 한 무리가 같은 버스정류장 앞에서 수학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대화를 이어가던 이들은 한 학생이 “△나 어려워”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이 △같은 걸 어떻게 풀어” “△나 더러운 문제”라며 비속어를 내뿜었다. 친구를 부를 때도 호칭 대신 욕을 쓸 때가 많았다.
PC방은 그야말로 욕의 세계였다.
같은 날 저녁 서울 용산구 문배동의 한 PC방. 남자 고교생 3명이 채팅을 하고 있었다. 슬쩍 들여다본 채팅창에는 ‘○신’의 초성을 딴 ‘ㅂㅅ’과 ‘×발’의 초성을 딴 ‘ㅅㅂ’로 가득했다. 불과 10여 분 동안 이들은 서로 간에도 “×발 괜찮은데?” “△나 컴 느려” 등 욕을 달고 살았다. 이 자리에 있던 심모 군(18)은 “요즘엔 중고딩(중고교생)할 것 없이 ‘패드립(패륜 드립)’을 많이 쓴다”며 “상대방의 어머니를 들먹이는 게 제일 화를 돋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치동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한 남자 중학생도 “온라인게임을 할 때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까 심한 욕도 하게 된다. 요즘은 ‘에미 뒤진 년’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나쁜 말에 진심을 담진 않았다. 버릇이 됐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욕을 한다는 대답이 많았다. PC방에서 만난 최모 군(15)은 “애들끼리 있으면 그냥 욕이 나온다. 욕을 하는 게 멋있다거나 하는 의식이 들진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친구끼리 쉽게 어울리기 위해 욕을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친구끼리는 욕설을 해야 감정 교류가 더 잘된다고 말하는 아이도 많았다. 박모 군(17)은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욕을 쓰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며 “남자 친구들한테 이름을 부르는 게 ‘오글거려서’ 욕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하종대 동아일보 부국장(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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