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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美병원 가상현실로 상황 재연… ‘상처의 뿌리’ 찾아 치료

입력 | 2014-01-08 03:00:00

‘PTSS 치료 선진국’ 美의 보훈부 산하 뉴욕 병원 가보니




미국 보훈부 산하의 뉴욕하버헬스케어시스템 맨해튼병원에서 가상현실 시스템을 활용해 상황을 재연하는 방식으로 PTSD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뉴욕하버헬스케어시스템 제공

《 3일 찾은 미국 보훈부(VA·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산하 뉴욕하버헬스케어시스템 브루클린병원은 한산했다. 신년 벽두부터 몰아친 눈폭풍으로 외래 환자들이 대거 진료 예약을 취소한 탓이다. 그러나 이 건물 14층에 자리 잡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클리닉’의 의료진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환자들의 발길이 뜸한 사이 신년 계획을 의논하느라 분주히 방을 오가며 회의를 열었다. 한 층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큰 이 클리닉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심리학 박사, 사회복지사 등 6∼8명이 한 팀을 이뤄 퇴역군인 군속 현역병 등의 PTSD 환자들을 전문으로 치료한다. 뉴욕하버헬스케어시스템 맨해튼병원의 PTSD클리닉과 이곳을 함께 관장하고 있는 애덤 월킨 정신건강의학과 부소장은 “올해에는 조기 진단 비율을 더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그는 환자를 접할 때마다 30여 년 전 진료실에서 마주했던 한 노령의 퇴역군인을 떠올린다. 이 환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비행기 추락 때 탈출에 성공했지만 상관을 남겨두고 온 죄책감에 진료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수십 년 전의 일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각하며 헤어나지 못하는 노병(老兵)의 모습에서 PTSD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르는 나라인 만큼 군인들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해외 전쟁터에서 복귀한 병사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인근 보훈부 산하 병원의 1차 진료실을 찾아 건강상태를 점검하는데, 이때 PTSD 진단테스트를 받는다. ‘PCL’로 불리는 이 테스트는 17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테스트에서 PTSD 환자로 의심되면 클리닉으로 보내져 집중 치료를 받게 된다.

미 보훈부는 전국을 23개 지구로 나눠 지구별로 직할병원, 협력 민간병원 등을 묶어 의료네트워크를 구성했다. 1400곳에 이르는 병원 어디를 가더라도 PTSD 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 141개 병원에는 전문 클리닉이 개설되어 있으며 브루클린병원도 이 중 하나다. 클리닉에서는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는 다소 가벼운 증상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약물처방을 주로 한다.

하지만 전쟁터 등에서 심각한 심적 내상을 입은 경우에는 환자들에게 때로는 가혹하기도 한 집중 치료가 이뤄진다. 가상현실(VR)시스템으로 충격을 받은 당시 상황을 재연하거나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환자들이 직접 마주하도록 만든다. 월킨 부소장은 “환자들은 처음에는 몹시 힘들어하지만 당시의 감정과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서서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증상에 따라 2∼4개월간 매주 외래치료를 받는다. 완치 판정이 내려지더라도 5년에 한 번씩 사후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10일에는 뉴욕 주 서북부 바타비아 시에 PTSD 여성 환자들이 입주해 살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고급 주거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희망센터’로 불리는 이 시설에 보훈부는 540만 달러(약 58억 원)를 투입했다. 환자 12명에게 개인 침실 등을 주는 이곳은 마치 휴양시설을 연상시킨다. 미 전역에 이런 주거시설이 남성 30곳, 여성 8곳에 이른다.

미 보훈부 의료네트워크가 PTSD 환자들을 위해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면 국립PTSD센터는 이들을 후방에서 든든하게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989년 보훈부 설립과 함께 문을 연 이곳은 관련 연구활동을 벌이는 기관으로 출발해 PTSD를 제대로 알리는 교육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국립PTSD센터는 최근 민간부문과 접점을 늘리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PTSD 증상이 군인뿐 아니라 △소방관 △경찰관 △대형 재난과 테러를 경험한 시민 △성폭행을 당한 여성 등에게도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PTSD센터의 파울러 슈너 부소장은 “한국이 외상 후 스트레스를 전담하는 센터를 제대로 만들려면 현 실태와 환자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하는 게 급선무”라며 “보여주기 위한 센터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PTSS) ::

전 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트라우마(Trauma)라고 한다. PTSS는 트라우마가 원인이 된 정신질환군(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보다 폭넓은 개념이다. 트라우마를 입었던 당시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공포에 시달리고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동반한다.

<특별취재팀>

▽팀장 하종대 부국장
▽사회부 김상수 차장 황금천 조건희 김성모 기자
▽국제부 박현진 뉴욕특파원 박희창 기자
▽정치부 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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