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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케이스 스터디]물물교환으로 재고해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입력 | 2014-01-09 03:00:00

美 기업간거래 업체 액티브인터내쇼날 ‘윈-윈 모델’




글로벌 자동차 업체인 A사는 2008년 미국에서 차량 1400대(장부가 2500만 달러·약 266억 원)의 재고가 발생했다. 재고 처리를 위해 A사 경영진은 미국의 자동차 딜러들을 접촉했지만 딜러들은 “50% 이상의 할인 판매를 해주면 고려해 보겠다”는 답변을 했다. 이들의 제안을 그대로 따르면 A사는 장부가의 절반인 1250만 달러(약 133억 원) 이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고민하던 A사는 기업 간 거래(Corporate Trading) 전문 업체인 미국 액티브인터내쇼날의 문을 두드렸다. A사의 의뢰를 받은 액티브인터내쇼날은 1400대 모두를 장부가 그대로 매입하겠다며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50% 할인을 해도 팔릴까 말까 한 자동차를 액티브인터내쇼날이 제값에 사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액티브인터내쇼날이 활용하고 있는 기업 간 거래는 재고, 부실채권 등 기업의 잉여 자산이나 부실 자산을 최대한 정상 가격에 인수하되 그 대가로 현금 대신 해당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특히 미디어 광고권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기업 간 거래 모델을 정착시킨 액티브인터내쇼날 사례를 DBR가 집중 분석했다.

○ 모두 ‘윈-윈’인 비즈니스 모델

액티브인터내쇼날이 A사와의 거래에서 내놓은 것은 현금이 아니라 미디어 광고권이었다. A사는 당시 미국에서 연간 4억 달러(약 4261억 원) 이상의 광고를 집행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동차를 판매한 대가로 현금 2500만 달러를 받는다 해도 광고 집행을 위해 다시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액티브인터내쇼날의 제안은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A사는 골칫거리였던 재고 차량을 제값에 팔아서 좋고 액티브인터내쇼날 입장에선 광고 판매에 따른 중개 수수료 수입을 거둘 수 있기에 손해를 볼 게 없었다. 액티브인터내쇼날은 광고 판매가 성사될 경우 광고 물량의 약 15%를 중개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A사로부터 구입한 재고 차량은 기업 간 거래 서비스를 활용하는 렌터카 업체에 팔았다. 한마디로 모두가 ‘윈-윈’ 하는 구조인 셈이다. 액티브인터내쇼날은 이런 방식으로 2012년 미국 본사에서 처리한 재고품 등의 취급액이 27억 달러(약 2조8765억 원)에 달했다.

○ 물물교환으로 재고를 해결하다

액티브인터내쇼날은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던 경영자 앨런 엘킨 회장과 아서 와그너 사장이 1984년 공동 창업했다. 엘킨 회장은 광고 판매 대행업에서, 와그너 사장은 잡화 판매 대행업에서 각각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이들은 재고품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다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기업들의 ‘물물교환’만으로도 재고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체적인 사업 모델 구상에 돌입했다. 예를 들어 B기업에서는 남아도는 재고품들이 C기업에는 꼭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B, C기업은 상대방의 사정을 알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은 재고품을 헐값에 처리하고 필요한 물품은 정상가로 구입한다. 회계장부에는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고품이 신상품이 아니라도 구입할 용의가 있는 고객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형 호텔 체인이나 렌터카 업체들의 경우 객실 TV로 꼭 최신 제품을 비치하거나 고객들에게 최신 모델의 차량을 빌려줄 필요는 없다. 호텔이나 렌터카 고객들도 잠시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신상품 여부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일 재고품을 가진 회사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제품을 정상가로 교환한다면 손실을 보지 않고 재고를 처리하며 꼭 필요한 제품도 구매할 수 있다.

○ 주요 수익원은 광고 중개 수수료

액티브인터내쇼날은 창업 초창기부터 기업 간 거래를 이용하려는 고객사로부터 중개의 대가로 별도의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액티브인터내쇼날은 어디서 수익을 창출할까. 바로 광고 중개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다. 액티브인터내쇼날이 재고를 정상가에 구입하는 대가로 광고권을 제공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들은 액티브인터내쇼날이 재고품을 가져가는 비용 대신 광고권을 제공하는 제안에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고 받아들인다. 물건을 더 팔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홍보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미디어에 광고를 해야 하는 기업들이 많다.

고객사로부터 떠안은 물건은 다른 고객사에 되파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즉, D라는 고객사가 처리해 달라고 요청한 재고품을 인수하고, D에 꼭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업체 E를 찾아가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재고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여 D에 제공하는 것이다. 대신 액티브인터내쇼날이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거래처를 확보해야 했다. 취급 품목에는 따로 제한을 두지 않았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가 이뤄져야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체로 대형 기업들과 거래를 텄다. 현재 액티브인터내쇼날은 미국 경제지인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70%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 거래 규모 최대화 유도

액티브인터내쇼날은 특히 거래의 지급수단으로 상품권과 비슷한 개념의 TC(Trade Credit)를 고안했다. TC를 가진 고객들은 액티브인터내쇼날이 거래 중인 다른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TV나 신문에 광고를 낼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액티브인터내쇼날은 통상 재고품을 받을 때 TC로 대금을 결제한다. 액티브인터내쇼날의 TC를 고객사가 사용하려면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실제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규모의 15∼20%만 TC로 지불할 수 있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내야 한다. 고객사가 100원에 상당하는 광고를 하고 싶다면 이 중 TC로 지불할 수 있는 건 15∼20원 수준이다. 액티브인터내쇼날의 입장에선 TC 판매를 통해 거래 규모를 키울 수 있다. 15∼20원의 TC가 실제로는 100원의 거래를 일으키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TC를 지불하고 대체로 광고권을 구매하기 때문에 거래량이 늘수록 액티브인터내쇼날이 얻을 수 있는 광고 중개 수입도 커진다. 물물교환을 활용한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킨 액티브인터내쇼날은 비즈니스 모델 혁신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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