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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표지 비웃듯 뻐끔뻐끔… 거리서 1m 들어가면 ‘흡연골목’

입력 | 2014-01-09 03:00:00

새해부터 단속 시작한 경희대-외대-인사동 금연거리 가보니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남쪽 인사코리아 건물 화단 앞에서 7일 오후 남성 2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곳은 새해부터 흡연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금연거리가 됐지만 버젓이 흡연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6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로 경희대 앞.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앞 대로변에서 김모 씨(29)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김 씨가 서 있던 곳은 동대문구에서 지난해 7월 지정한 금연거리(경희대 정문∼경희대 앞 삼거리 240m 구간)에 속한다. 바닥 곳곳에 ‘금연구역’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 있다. 1일부터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기자가 다가가 금연구역임을 알리자 김 씨는 “몰랐다”며 황급히 담배를 끄고 인근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금연거리 곳곳에는 지난밤부터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가득했다. 》  

동대문구 내 또 다른 금연거리인 한국외국어대 앞(외대 교차로∼지하철 외대앞역 250m 구간)에서도 흡연자를 볼 수 있었다. 대학생 상모 씨(25)는 “금연구역 표시가 붙은 다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길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종로구 인사동 금연거리(남인사안내소 인근∼안국동 사거리 690m 구간)에서는 진입로 쪽 인사코리아 건물 오른쪽 화단이 아예 ‘불법 흡연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6일 오후 기자가 찾았을 때 화단에는 담배꽁초가 가득 담긴 종이컵, 빈 담뱃갑 등이 쌓여 있었고 남성 4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화단에서 불과 1m 거리에 금연구역 표지가 붙어 있었다. 담배를 피우던 대학생 정모 씨(27)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피우니까 흡연구역인 줄 알았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공공장소 금연이 확대되면서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너나없이 금연거리 지정에 나서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자치구가 운영 중인 금연거리는 총 10곳(과태료 부과 장소 기준·광장 제외). 2012년 6월 서초구가 강남대로를 금연거리로 지정한 이래 계속 늘고 있다. 이 중 새해부터 단속이 시작된 경희대 앞, 한국외국어대 앞, 인사동 등 금연거리 3곳은 지금도 거리에서의 흡연이 여전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9월 단속을 시작한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금연거리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 금연거리에 속하는 도곡동길(롯데백화점∼우성아파트 700m 구간)과 삼성로(대치 사거리∼한티근린공원 950m 구간)에서도 여전히 흡연자와 담배꽁초가 사라지지 않았다. 6일 오후 한티근린공원 인근 대로변에서 중년 남성 2명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고 또 다른 남성은 금연구역 표시가 바닥에 붙은 거리를 걸어가며 담배를 피웠다.

금연거리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것은 지자체의 단속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 지자체는 금연거리를 포함해 관내 금연구역 단속직원을 따로 두고 있는데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동대문구 내 금연구역(금연거리, 음식점, PC방 등)은 4313곳이지만 구의 단속직원은 단 3명이다. 종로구는 금연구역 약 5000곳을 1명이 담당한다. 강남구 역시 약 1만 곳에 이르는 구역을 4명이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9∼12월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금연거리에서 이뤄진 흡연 단속건수는 12건에 불과하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단속 민원이 들어오는 곳에 출동하기도 바쁘다”며 “현실적으로 단속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금연거리와 구석구석 연결된 골목길로 1m만 들어가면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점도 단속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날 한국외국어대 앞 금연거리에서는 대로변의 한 식당에서 나온 남성이 익숙한 듯이 옆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 흡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학생 전모 씨(19)는 “담배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피우기 때문에 이렇게 대로변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도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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