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지난해 12월 31일 뉴욕 시청사 주변에서 지지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하지만 블룸버그는 그냥 부자가 아니다. 월가에서 성공한 사업가보다 기부가로 더 유명하다. 그는 지금까지 2조4000억 원을 기부했다. 미국의 역대 10대 기부가에 꼽힌다. 그의 씀씀이가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시장을 하면서 적어도 650억 원의 개인 돈을 썼다는 보도였다. 그의 기부 손길이 뉴욕 곳곳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 그는 뉴욕의 예술, 문화단체 등에 263억 원을 기부했다.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시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30억 원의 개인 돈을 냈다. 시장실 직원들에게 매일 가벼운 아침과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데 8억9000만 원을 쓰기도 했다. 12년 동안 판공비를 한 푼도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세기의 시장’이란 칭호까지 듣는 것은 통 큰 기부가 아니라 강력한 개혁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9·11테러 이후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대탈출로 인해 뉴욕은 쇠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세계 최고 도시의 시장에 어울리는 화려한 영웅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자료를 중시하는 기술자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임기 12년 동안 뉴욕의 삶은 통째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낡은 창고가 즐비했던 부둣가를 패션 거리와 고층 아파트 단지 등으로 바꾸고, 쓰지 않는 철로를 산책로로 바꿨으며 지하철을 연장했다. 뉴욕의 겉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뜯어 고쳤다.
블룸버그의 개혁 대상에는 공무원도 포함되었다. 뉴욕 시 공무원들에게 그는 너그러운 기부가가 아니라 저승사자였다. 12년 동안 시 의원과 공무원 등 6773명이 각종 부패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 해 평균 544명. 이 숫자는, 연방검사 시절 마피아를 소탕하고 월가의 금융비리를 척결한 루돌프 줄리아니 전임 시장 당시 8년 동안 한 해 평균 325명이 구속된 데 비하면 1.7배에 이르는 것이다. 공무원 부패를 없애겠다는 블룸버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2002년 연방검사 로즈 헌을 조사국장에 임명하면서 그녀에게 ‘완전한 독립’을 약속했다. 그러곤 줄리아니 전 시장과는 달리 조사국장의 직접 보고를 받는 관행을 없애버렸다. 수사에 어떤 간섭과 개입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임인 빌 더블라지오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두 개의 도시가 되었다”고 블룸버그를 비판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으며, 금권정치와 대중인기영합주의를 추구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시장이 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믿으며 블룸버그식 개혁을 따라하는 시장이 수십 명이라고 한다.
올해 우리나라는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뽑는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의 적이 되어가고 있다. 돈과 각종 인연에 사로잡힌 선거문화와 풍토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자격 있는 인물을 뽑는 제대로 된 절차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단체장들은 선거를 위해 당장에 보여주는 것이 급할 뿐이다. 멀리 내다보고 논란을 마다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거나 공무원들의 부패를 없애는 개혁은 엄두도 내지 않는다. 오히려 온통 축제나 벌이고 각종 대회를 유치하는 등 손쉬운 전시행정, 선심행정에 열을 올린다. 공무원 인사 때 돈을 챙겨 선거에 드는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공무원들이 시장의 지시라는 핑계를 대며 온갖 부당한 행정을 해도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한국의 도지사, 시장, 군수들에게 블룸버그처럼 월급을 포기하거나 개인 돈을 털어 자치단체를 운용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처럼 진정한 개혁을 하길 바랄 뿐이다. 그런 단체장을 누가 뽑는가. 깨어 있는 국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