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교장실로 전화 걸어 “당신 친일파지” 윽박

입력 | 2014-01-09 03:00:00

[교과서 채택 철회 외압 논란]
교학사 선정 학교 어떤 외압 받았길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선택했다가 외부 압박에 못 이겨 철회한 학교들이 철회 과정에서 심한 욕설이나 폭언 등 도를 넘는 비난에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교과서의 ‘내용’ 문제가 아닌 ‘외압’ 문제로 채택을 포기한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취소한 전국 16개 고교의 교장, 교감 및 학교 관계자 등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12개 학교에서 다양한 형태의 외압이 있었다.

○ ‘친일파’ ‘매국노’라며 원색적 비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에서는 철회 직전까지 욕설을 담은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경기 수원시 동원고 김선호 교감은 “우리 학교가 교학서 교과서를 선택한 사실이 알려진 뒤 ‘친일파’ ‘매국노’란 전화가 하루 종일 걸려왔다”며 “결국 3일 교학사 교과서 철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수원시 동우여고 최광호 교장은 “학생들은 학교 벽에 대자보를 붙이고 학부모들도 항의성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철회한 학교 대부분은 학부모, 학생뿐 아니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및 시민단체에서까지 강한 항의를 받았다.

경남 창녕고 박준효 교장은 “사회적 여론이 너무 큰 압박으로 다가와 선택을 철회했다”며 “언론에 보도된 뒤 일부 창녕군 지부 소속 시민단체들의 항의성 전화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대구 포산고 김호경 교장은 “재야의 학자나 연구단체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선정하지 말라고 요구해 왔다”고 했다. 경남 지리산고 박해성 교장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전교조 경남지부까지 전화로 항의하더라”고 말했다.

경북 성주고 정진태 교장은 “지역 시민단체들이 ‘경북에서는 성주고밖에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다’며 학교에 정식 항의를 준비해 어쩔 수 없이 철회했다”고 밝혔다.

○ “정상적으로 채택된 교과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의 교장 및 학교 관계자들은 교육부 검정에 통과된 정상적인 교학사 교과서를 절차에 따라 선택했음을 강조했다.

포산고 김호경 교장은 “원래 교과서는 교사협의회에서 선정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 한다”며 “처음 교과서를 선정할 당시 교학사 교과서가 1순위였고 비상에듀 교과서가 2순위였다”고 밝혔다. 포산고는 외압 때문에 선정 당시 2순위였던 비상에듀 교과서를 최종 선택해야만 했다.

성주고 정진태 교장도 “교학사 교과서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합의해 채택한 교과서였다”고 말했다. 본보가 접촉한 학교 관계자들은 정상적인 절차로 채택한 교과서가 외압으로 번복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학교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 정치 논리가 교육현장 훼손

일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장, 교감 및 교사들은 이번 사태를 정치 논리가 교육현장에 끼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주 상산고 박삼옥 교장은 “처음에는 교학사와 지학사 교과서 두 개를 수업에 활용하려 했는데 민주당 도의원들과 전교조,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 같은 시민단체 등에서 강한 항의가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상처받고 진실을 왜곡해서 이해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분당영덕여고의 한 교사도 “흑백논리의 정치이념이 교육현장에 끼어들어 정치가 교육을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학교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이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차이가 있어야지 발전하는 것이다”라며 “인터넷상에서 우리 학교를 친일학교 등으로 매도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