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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키우는 조폭… 16년간 배꼽 잡아

입력 | 2014-01-10 03:00:00

1998년 시작한 만화 ‘키드갱’ 대장정 끝낸 신영우 작가




신영우 작가는 16년 만에 ‘키드갱’을 끝내고 만화 잡지 아이큐 점프에 연재 중인 ‘서울협객전’에 집중하고 있다. “할 줄 아는 게 만화 그리기밖에 없어요. 그릴 땐 괴롭지만 마감한 뒤 하루, 이틀 갖는 여유가 정말 좋아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강대봉은 폭력조직 ‘피의 화요일’을 이끄는 보스다. 대봉의 밑에는 미남 칼잡이 칼날, 평소엔 바보 같지만 술이 들어가면 초인이 된다는 전설의 홍구, 그리고 조직의 살림꾼 한표가 있다. 어느 날 이 조폭들은 우여곡절 끝에 가스 폭발 사고로 부모를 잃은 젖먹이 철수를 키우는 처지가 된다.

여기까지 들으면 범죄자 아버지 다섯을 둔 소년의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년)가 떠오른다. 하지만 신영우 작가(43)의 ‘키드갱’은 조폭 4명이 아기를 키우며 생기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다룬 코믹 만화다.

1998년 11월 단행본으로 시작해 만화잡지 연재를 거쳐 2012년 5월부턴 네이버 웹툰으로 이어져 온 ‘키드갱’이 5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만화의 결론을 빨리 보여 달라는 사람이 많았어요. 16년 만에 결말을 내고 나니 죄송한 마음도 덜 수 있고 시원하네요.”

8일 서울 화곡동 작업실에서 만난 신 작가는 개그를 펑펑 터뜨리는 ‘키드갱’의 조폭들과는 달리 목소리가 작았다. 그는 작업실 후배 앞에서 인터뷰하기 부끄럽다며 기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단행본에 연재할 당시 조폭 영화가 인기였어요. 그래서 조폭을 등장시키기로 하고 고민하다 조폭에 가장 대비되는 캐릭터로 아기를 넣게 됐죠.”

‘키드갱’은 조폭과 육아를 결합한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귀여운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싶지만 직업이 조폭인지라 떠오르는 단어는 ‘칼부림’이나 ‘방사능’ 같은 살벌한 단어들뿐이다. 배고프다며 우는 철수를 달래려고 조폭들은 웃통을 벗고 제 가슴을 내민다. 똥 싼 아기를 씻긴답시고 화장실에서 호스로 물을 뿌려 댄다.

그러면서도 카리스마 짱인 보스가 아기만 보면 헤죽헤죽 웃고, 아기를 위해 팔이 부러지는 고생도 마다 않는 조폭들을 보며 독자들은 즐거워했다. ‘키드갱’ 단행본 23권이 40만 권 넘게 팔려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2007년엔 동명의 케이블 드라마로 제작됐다. 특히 술만 마시면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전설만 전해 올 뿐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던 홍구가 막판에 진짜 술을 마시고 변신하는 장면에선 ‘키드갱’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신영우 작가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그려 보냈다. 기자의 좌우명은 ‘사나이는 꾸준히’.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6년간 ‘키드갱’을 붙들고 끝장을 본 신 작가 앞에선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신영우 작가 그림

신 작가는 만화학원 수강과 독학을 마치고 1994년 ‘남자만들기’로 데뷔했다. ‘키드갱’은 신예 시절이던 27세에 시작했는데 이제 작가도 중년이 됐다. 그는 스스로를 ‘꾸준히 그리지만 늘 한발 늦는 만화가’라고 했다.

‘꾸준히 그린다’는 자평은 맞는 말이다. 2000년대 들어 불법 스캔 만화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출판 만화는 고사 상태에 빠졌다. 학습 만화나 게임업계로 옮겨 간 이도 많았다. 신 작가는 학습 만화를 병행하며 버텨 냈다. “일부 업체는 하청 그림쟁이나 기능공 취급을 했지만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돈이 모이면 키드갱을 그리는 데 집중했죠. 꾸준히 그리면 좋은 날이 올 거라 생각했어요.”

신 작가는 매일 영화 한 편을 보고 인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본다. “많이 보면서 대중이 좋아하는 유머 코드를 찾아내고 그걸 한 번 더 비틀려고 해요. 개그 장면을 그린 다음엔 제3자의 시선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죠. 통쾌하고 시원한, 걱정 없이 볼 수 있는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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