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대기업 수사 사실상 매듭
검찰이 9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78)을 불구속 기소하고 이석채 전 KT 회장(69)의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지난해 진행된 대기업 수사가 사실상 매듭지어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54)을 비롯해 지난해 전례 없을 정도로 많은 대기업 총수가 수사와 재판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재계는 ‘김진태 검찰총장 체제’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사법처리 수위 놓고 엇갈린 표정
효성그룹 비리를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 윤대진)는 5010억 원대의 회계분식으로 세금 1506억 원을 포탈하고 회삿돈 690억 원을 빼돌리는 등의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포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등)로 조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62) 등 그룹 임직원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신병 처리 방향을 고심하다 조 회장이 지병을 앓고 있는 점을 감안해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았다.
효성 측은 ‘조 회장 부자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점에서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다. 효성 측은 “검찰 수사 결과를 존중하지만 15∼20년 전에 시작된 사안을 현재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반면 전현직 총수가 구속될 위기에 처한 KT와 동양그룹에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양호산)는 이 전 KT 회장에 대해 각종 사업 추진과 자산 매각 과정에서 100억 원대의 배임과 수십억 원의 횡령을 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전 회장의 배임 혐의에는 야당 중진인 A 국회의원과 관련된 혐의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A 의원과 연결이 되는 정보기술(IT) 업체가 KT 계열사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20억 원가량의 채무가 있었는데, 이를 투자금 형식으로 전환해 채무를 변제한 것으로 처리해 줌으로써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한 영장이 발부될 경우 채무 변제 처리 과정에서 A 의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만 명의 개인 피해자를 양산한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은 2조 원대의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돼 13일 구속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 하겠다”
이미 검찰 수사를 받은 기업들은 법원의 재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원이 대기업 총수에 대해 잇따라 엄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해 9월 고령의 구자원 LIG그룹 회장(79)이 사기성 CP 발행 혐의로 법정 구속된 것은 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2000억 원대의 횡령 배임 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1심 공판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수법이 상세하게 드러나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한편 김진태 검찰총장이 실적 위주의 별건 수사나 무리한 기소를 피하고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다소 거칠다는 평가를 받아온 검찰의 기업 수사도 일정 부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