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흥 논설위원
그 무렵 어느 날 백담사로 뜻밖의 물건이 왔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은밀히 보낸 울(wool) 양말과 음악 CD, 양갱이었다. 산골의 혹한 속에서 권력무상에 치를 떨었을 전 씨가 나카소네의 배려에 어떤 느낌이었을지 안 물어봐도 알 것 같다. 나카소네는 ‘보수의 유언’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전 씨를 챙긴 이유를 “걱정이 되는 나머지”라고 밝혔다. 젊은 시절부터 연(緣)을 맺으면 그 연을 존중하고 따른다는 결연(結緣) 존연(尊緣) 수연(隨緣)을 인생의 모토로 삼았다는 그다운 일화다.
나카소네는 재임 중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했지만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5년 8월 15일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한중 양국에서 격렬한 반일감정이 폭발했음은 물론이다. 그 뒤론 다시는 야스쿠니를 찾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결국 외교도, 국정 운영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지도자도 사적인 친분에 얽매인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나카소네는 한중일의 정상들이 자주 만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말했다. “외교 수뇌부들이 만나는 과정에서도 우정의 싹이 튼다. 이것은 외무성의 관료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말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한 뒤 한일,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에 귀를 막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만들기에 몰두하는 아베 총리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어떤 변명도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그가 한중 정상을 만나고 싶다고 거듭 밝히는데 계속 외면하는 것도 딱하다. 일본과는 같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 않은가.
꼭 31년 전 오늘이다. 1983년 1월 11일 나카소네는 일본 총리로는 사상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교과서와 경협 문제 등으로 험악했던 한일관계를 직접 풀어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나카소네는 그날 만찬에서 모두(冒頭) 인사와 마무리 발언을 평소 익혀둔 한국말로 했다. 우리 측 일부 참석자는 눈물을 훔쳤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어진 술자리에선 두 정상이 부어라 마셔라 하며 얼싸안았다. 나카소네는 방한이 ‘대성공’이었다고 자평했다.
그가 총리가 된 뒤 첫 방문국으로 미국 대신 한국을 택한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정통성이 취약한 한국 대통령과 연을 맺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