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스 “모든 회의 들어가야… 과정 모르면 결과 설명못해”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1961∼1963년) 대변인을 지낸 피어 샐린저가 백악관에서 메모지를 들고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그런데 이곳에선 매일 정오만 되면 백악관 브리핑이라는 드라마가 한 편씩 나온다. 백악관 대변인과 미국 최고의 기자들이 벌이는 치열한 질의 응답과 두뇌 싸움을 보면 스릴러 같고, 이들이 주고받는 농담을 들으면 코미디 같다. 브리핑 전 과정은 영상과 문자로 기록돼 곧바로 백악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되고 각국 외교부로 보내진다.
백악관 브리핑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다. 그 무대를 장악한 대변인은 ‘뉴스 제조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명성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미국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백악관 대변인처럼 고단한 자리가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밤잠도 설치는 빡빡한 하루
얼마 전 카니 대변인이 한 잡지에 소개한 하루 일정을 보면 그의 기상 시간은 오전 5시다. 컴퓨터와 TV를 켜 밤새 뉴스를 체크하는 것으로 그의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은 1시간 동안 길게 먹는다. 아침을 먹으면서 주요 신문을 모두 읽고 긴급 대응이 필요한 기사가 있는지 챙긴다.
7시에 출근하면 대변인실 참모진과 회의를 한다. 30분 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들이 참석하는 회의에 들어간다. ‘결정 회의’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회의로 미국 대통령의 주요 현안이 결정되는 자리다. 대변인의 ‘말발’은 이 회의 참석 여부에 달려 있다. 결정 회의에 참석한 대변인은 백악관이 어떤 현안을 다루고 개별 안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기자들에게 풀어놓을 브리핑 재료가 풍성해진다. 물론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모두 풀어놓지는 않는다. 사소한 것이라도 잘못 풀어놓았다가는 뒷감당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 9시 30분 ‘프레스 개글(press gaggle)’로 불리는 비공식 브리핑이 기다리고 있다. 정오 브리핑 전에 열리고 공식적으로 기자단 전체를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대변인이 국내외 현안에 대한 배경 정보를 비(非)보도를 전제로 공개한다. 중요 정책의 배경이 궁금한 기자들은 열심히 참석할 수밖에 없다.
개글이 끝나면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들과 전화 회의(콘퍼런스 콜)를 갖는다. 미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외교 안보 현안은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변인들끼리 입을 맞춰야 한다. 이 회의가 끝나면 대변인실 참모진과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서 쏟아질 예상 질문을 뽑고 답변을 만든다.
이 과정을 모두 마쳐야 ‘메인 쇼’라고 할 수 있는 정오 브리핑에 들어간다. 대통령 휴가 때만 빼고 낮 12시에서 12시 반 사이에 어김없이 브리핑은 열린다. 의회방송 C-SAPN이 매일 생중계하며 CNN 폭스뉴스 등 뉴스 채널도 자주 실시간으로 내보낸다.
오후에는 대변인 전화에 불이 난다. 마감이 임박한 기자들의 전화가 쏟아진다. 대변인의 하루는 오후 11시 기자들에게 다음 날 대통령 일정을 알리는 e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전화는 한밤중에도 걸려온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대변인이었던 래리 스피크스는 “전화를 받느라 세 번은 깨야 대변인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실세 대변인과 무능한 대변인
미국 역시 실세 대변인이 대접을 받는다. 실세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면 브리핑룸은 기자들로 꽉 들어차고 질문도 날카롭다. 실세 여부는 대통령의 측근에 포함되느냐와 핵심 정보에 접근하느냐에 달렸다.
카니 대변인의 전임자였던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은 확실한 실세 대변인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초기 정치 시절부터 동고동락을 했던 그는 백악관 고위급과 함께 중요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정확했다. 그는 또 개그맨에 버금갈 정도로 농담을 잘해 브리핑을 한 번 할 때마다 10번 이상 웃음이 터졌다는 기록도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디디 마이어스 대변인은 백악관 최초의 여성 대변인이자 32세의 젊은 나이에 대변인에 발탁돼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측근이 아니었던 탓에 중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그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아직 이라크 공습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한 지 몇 시간 후 미국은 공습을 단행했다. 대변인으로서 신뢰도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백악관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해당 부처에 물어봐라”라며 답변을 미루는 대변인을 가장 무능한 대변인으로 꼽는다. 완벽한 대답을 할 자신이 없는 대변인은 브리핑에 해당 부처의 장관을 불러 직접 설명하게 한다. 요즘은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의 주무 장관인 보건부 장관이 백악관 브리핑에 단골로 등장한다. 백악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잡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백악관 내부의 핵심 정보에도 접근하지 못하면 기자들은 대변인의 입에 신뢰를 주지 않는다.
대통령 사생활 홍보에서 출발… 보스와의 ‘악연’도
백악관 대변인은 원래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역할에서 출발했다. 1886년 49세의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21세의 젊은 신부와 결혼한 후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언론 비서를 임명했다. 이 비서가 백악관 대변인의 시초라는 게 정설이다. 그후 대변인은 점차 정부 정책과 대통령의 공적 활동을 알리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대변인으로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마이크 매커리 대변인이 꼽힌다. 4년 동안 장수했던 그는 말기에 모니카 르윈스키 성추문이라는 초대형 스캔들을 만났다. 그는 대통령의 거짓말로 판명된 이 사건에서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다’는 대통령 성명을 앵무새처럼 낭독했으며 대통령 성생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뺐다.
대변인이 대통령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고 사표를 던진 일도 있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제럴드 터호스트는 포드 대통령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사면 결정을 지지할 수 없다며 취임 한 달 만에 사표를 내고 포드 자동차 대변인으로 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대변인이었던 스콧 매클렐런은 대변인에서 물러난 후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하는 책을 냈다. ‘의리 없이 전임 상사를 배신했다’며 대변인계에서 따돌림을 당한 그는 대학교수로 조용히 살고 있다.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대다수는 퇴직 후 주로 홍보회사를 차리거나 TV 출연으로 또 다른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