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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소통의 꽃, 불통의 公敵

입력 | 2014-01-11 03:00:00

‘대통령의 입’ 청와대 대변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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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11일 오후 4시 정부서울청사.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긴급 성명서를 낭독했다.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시간 청와대 위민3관 1층 대변인실에 있는 김행 당시 대변인의 휴대전화 벨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청와대가 미리 “통일부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여서 기자들은 성명서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성명이 대통령 뜻이라고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최대 관심사는 이 성명이 박근혜 정부의 공식 대화 제의인지였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대화 제의였다. 지난해 2월 북한 핵실험 이후 가파른 대결로 치달아 온 남북관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는 계기이기도 했다.

류 장관은 성명서 낭독 후 ‘공식 대화 제의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화 제의라기보다…”라고 답했다. ‘아니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시선이 청와대로 쏠린 건 당연지사. 김 대변인은 류 장관의 성명서 낭독 모습을 TV로 지켜본 뒤 곧바로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관계자는 “류 장관과 같은 답변이면 되겠느냐”(공식 대화 제의는 아니라는 취지)는 김 대변인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공식 대화 제의가 아니다”라고 확인해줬고, 그 논조로 기사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후 6시를 넘어가면서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의 뜻은 공식적인 대화 제의였다는 사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한 대처를 주문해 온 박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읽은 것이다. 그날 오후 8시 이정현 당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공식 대화 제의가 맞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김 대변인이 이후 청와대 안팎에서 입지가 좁아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엄밀히 말해 그는 고위 관계자로부터 확인된 내용을 기자들에게 전달만 했지만 그 책임을 오롯이 지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잘못 알려준 관계자 탓을 할 수도 없었다. 》  

▼ 남녀 공동대변인 주도권 경쟁… 날짜 나눠 브리핑도 ▼

대통령 공식 행사가 급증하고 청와대 출입기자 수도 크게 늘어나면서 이명박 정부 때 처음 시행된 남녀 2인 대변인 체제는 두 사람 간 주도권 다툼으로 종종 갈등을 유발했다. 박근혜 정부도 윤창중(오른쪽), 김행 대변인 체제로 시작했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 동아일보DB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살얼음판의 연속인 ‘3D 직업’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 첫해인 지난해까지 대변인의 평균 임기는 10.5개월에 그쳤다. 감춰져 있는 청와대 대변인의 속살은 어떨까?


비운의 대변인 vs 부족한 대변인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31일 사의를 표명했다. 공식 사의는 이때 밝혔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사실상 업무에서 배제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본인이 대변인직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실제로 그즈음 청와대 내에서는 대변인 교체설이 유력하게 돌기도 했다.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8월과 11월 여성인 서미경 대통령문화비서관과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이 잇따라 교체되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다음은 자기 차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취임 1년도 안 됐지만 여성 청와대 비서관 6명 중 4명이 교체됐다.

김 전 대변인은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만 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현 정부 출범 첫 홍보라인인 이남기 홍보수석(예능PD 출신), 윤창중(보수 논객)-김행(여론조사 전문가) 대변인 라인은 박 대통령이 충성심보다 전문성을 높이 산 새로운 실험 인사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홍보라인은 전문성을 발휘하기도 전에 언론과의 소통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김 전 대변인의 역할은 5월 대통령의 방미 당시 윤 대변인이 인턴 직원 성추행 논란으로 사퇴한 뒤 오히려 더 축소됐다. 이남기 홍보수석이 낙마하면서 새로 온 이정현 홍보수석의 왕성한 활동이 결정적인 요인. 이 수석은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배경설명을 한다며 기자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자연스럽게 김행 대변인이 춘추관을 찾는 횟수가 크게 줄었고 대통령 행사 참석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도 생겼다.

6월 대통령의 중국 순방 과정에서 김 전 대변인에게 억울한 사건이 또 터졌다. 6월 28일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초청 만찬장에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비공개 행사라 청와대에 소속된 사진사만 그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이 해외에서 한복을 입는 모습이 화제가 될 수 있던 터라 언론들은 청와대에 사진을 요청했고 누군가의 지시로 그 사진은 언론에 제공됐다.

그러나 뒤늦게 외교 라인으로부터 전통의상을 입은 대통령의 모습이 공개될 경우 중국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 전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사진 보도 자제 요청을 하러 다녔다. 마치 김 전 대변인이 외교도 모른 채 언론에 무턱대고 사진을 제공한 것처럼 비쳤다. 언론에 사진 제공을 지시한 건 다른 사람이었지만 김 전 대변인이 책임을 뒤집어쓴 셈이다.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하기 하루 전 기자들에게 대구 서문시장도 들를 예정이라고 귀띔해 줬다. 대통령의 외부 일정은 보안상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이지만 기자들에게 정보 제공 차원에서 알려준 것. 그러나 다음날 대통령 일정상 서문시장 방문이 취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매체 기자들이 “왜 오락가락하느냐”고 항의했다. 김 전 대변인은 ‘윗선’으로부터 “왜 확정되지도 않은 일정을 기자에게 알려 혼란을 초래하느냐”는 질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김 전 대변인은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 일정이 취소된 사실조차 전달받지 못한 상태였다.

김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열정이 있었으나 활동할 공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비운(悲運)의 대변인’이라는 평가와 부족한 정무감각으로 제 역할을 못한 ‘무능한 대변인’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대선후보 대변인 vs 청와대 대변인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까지만 해도 이상일 의원,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등 당시 대변인들과 수시로 만나고 통화했다. 대변인들도 수시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메시지와 논평을 상의했다. 박 대통령과 대변인 사이는 그 어느 측근보다 가까운 자리였다.

김 전 대변인은 대부분의 대통령 행사에 동행했지만 별도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몇 번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목은 대변인 위에 홍보수석이 존재하는 청와대 조직의 특수성과 연관돼 있다. 이른바 ‘실세’ 홍보수석 산하라면 더욱 그렇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하루에도 수차례 이정현 수석과 이야기하기 때문에 본인의 뜻이 이 수석을 통해 대변인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대변인과의 소통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이전까지는 공보수석이 대변인을 겸직했다. 당시 공보수석은 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실세’들이 많이 임명됐고, 대통령의 ‘입’ 역할에 충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공보수석의 명칭을 홍보수석으로 바꾸고 대변인과 분리했다. 윤승용 천호선 전 대변인이 홍보수석을 잠깐 겸임한 적이 있지만 홍보수석은 ‘스핀닥터’,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 역할로 분리했다. 스핀닥터는 정부의 정책이나 입장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생각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홍보기획 기능이 강화된 광범위한 정치홍보전문가를 뜻한다. 홍보수석은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대변인은 수석급에서 비서관급으로 낮아지면서 인물과 업무의 중량감도 떨어졌다.

이명박(MB) 정부 들어 초창기에는 홍보수석 없이 이동관 대변인이 수석급으로 대변인 역할을 하다가 취임 1년 반 만에 홍보수석과 대변인 이원화 형태로 돌아갔다. 홍보기획 조정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처음으로 청와대에 남녀 공동 대변인 체제가 도입됐다. 대통령 공식 행사가 많아졌고 응대해야 할 기자 수도 200여 명에 달해 단독 대변인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녀 공동 대변인 간의 주도권을 둘러싼 분쟁이 늘 문제였다. 처음에 박선규 제1 대변인, 김은혜 제2 대변인이 임명돼 각각 국내와 외신 파트를 맡게 했으나 파트와 무관하게 서로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홀수, 짝수 날짜로 나눠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윤창중-김행 체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전 대변인 모두 임명을 통보받은 당시에는 단독 대변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주도권을 두고 다툰 두 사람은 이내 서로 말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됐다. 두 대변인의 브리핑 순서를 조정하느라 실무자들이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2009년 1월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모든 관심은 연초 개각에 맞춰져 있었다. 1월 13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이 개각 가능성을 묻자 “논의된 바 없다. 있어도 설 연휴 전에 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대변인을 불러 “그렇게 세게 말을 하면 어떡해”라고 물었다. 이 대통령은 내심 14, 15일을 개각 날짜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대변인의 대답. “기자들이 개각 인선 취재에만 너무 신경이 곤두서 있어 재량껏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발표하면 제가 기자들에게 사과하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래도 대변인이 우리 얼굴인데, 대변인의 말에 신뢰가 있어야지…”라며 발표 날짜를 미뤘다. 그 후에도 개각설이 계속 확산되자 결국 19일에 발표했다.

당시 ‘부통령’ 소리까지 들었던 실세 대변인도 개각같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기자들의 질문에 무조건 “모른다”고 답하기도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北 미사일 쏴도 우린 나무를 심는다’는 이동관의 윤색 ▼

청와대 대변인의 애환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 외에도 전화나 대면접촉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자들과 만난다. 사안을 모르거나 답변 내용이 부족하면 무능한 대변인으로, 답변이 지나쳐 혼선을 빚으면 사고뭉치 대변인으로 인식된다. 이동관 전 대변인(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008년 춘추관 2층 계단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청와대 대변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

김행 전 대변인은 매일 오전 6시 30분경 청와대로 출근했다고 한다. 조간신문의 기사를 살펴본 뒤 매일 오전 8시경 시작하는 홍보회의에 참석했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홍보수석 등 국정기획, 홍보라인의 비서관급 이상이 참여하는 이 회의에서 그날의 홍보전략을 세운다. 오전 8시 반 전후로 홍보회의를 마치면 대통령 또는 비서실장 주재의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린다.

하루 종일 대변인의 전화기는 기자들의 문의 전화로 불이 난다. 현안이 발생하면 대변인이 직접 각 수석과 통화해 취재를 해야 한다.

역대 정권에 따라 대변인의 역할은 다양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대변인의 역할은 크게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과 현안 대응 두 가지다.

생각보다 대변인은 자율권이 적다. 대변인은 대통령의 모든 행사에 참석한 뒤 비공개 부분 때 대통령의 발언을 정리해 공식 브리핑 내지 서면으로 기자들에게 전달한다.

전임 정권에서는 대변인이나 홍보수석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각색해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MB 정부 시절인 2009년 4월 5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이 대통령이 식목일 기념식수를 하면서 “북한은 미사일을 쏘지만 우리는 나무를 심는다”라고 말한 발언이 화제가 됐다. 실상은 이 대통령이 지나가는 말로 “뭐, 우리는 나무나 심지”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듣고 이동관 대변인이 가공해서 만들어낸 말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왜곡 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원하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행사 때마다 대변인실 직원이 들어가서 받아치는 녹취록을 풀어서 오타만 수정하고 그대로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대변인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관여할 공간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언론에 직접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주로 홍보수석이 담당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주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의 대응기조를 면밀히 파악해 기자들 문의에 답을 해야 한다. 청와대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안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기에 대변인도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기자들에게는 늘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들어야 하는 대변인이지만 정작 청와대 내에서는 ‘야당’ 취급을 받는 이중고를 겪는다. 현안이 발생하면 대변인은 각 수석비서관들에게 전화해 취재하고 조율한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 수석비서관들은 언급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교 안보 분야는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행이라는 이유로, 보안사항이라는 이유로 대변인에게 잘 알려주지 않는다.

기자와 접촉면이 넓은 대변인은 특정 언론사에 보도가 새어 나가면 ‘유출자 1호’로 의심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각 수석실에서는 대변인이 알려달라고 하면 기자들에게 새나갈 것을 걱정해 소극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홍보라인을 배제하고 정책을 추진하다 문제가 생긴 사례도 허다하다. 이명박 대통령 말기 곤욕을 치렀던 내곡동 사저 문제도 경호처가 홍보나 정무 쪽에 알리지 않고 몰래 진행하다가 사달이 난 경우다.

대변인의 말은 대통령의 말로 이해되기 때문에 현안에 대해 한 번 말실수를 하면 돌이키기 어렵게 된다. 신속하게 하는 동시에 그 사안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한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에 두 차례 대변인으로 하여금 정례브리핑을 하도록 했고 이를 생중계했다. 그러나 첫 대변인이었던 송경희 대변인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당시 기자들이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변화가 있느냐”고 묻자 “워치콘(Watch Condition·대북정보감시태세) Ⅲ로 한 단계 높였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답했다. 기자들이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방어준비태세)이 아니냐”고 묻자 “죄송하다. 군사나 작전에 관한 것은 충분히 답변해드릴 수 없다”며 주춤했다. 기자들이 재차 “한 단계를 올린 것은 맞느냐”고 묻자 송 대변인은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통일부와 국방부가 즉각 부인했으나 이미 외신들은 한반도가 긴장상태에 들어갔다고 보도한 뒤였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며 예정된 남북경제협력회의를 취소하는 등 후폭풍이 컸다. 송 대변인은 몇 차례 실수가 겹치며 72일 만에 사퇴했다.

이런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대변인은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윤태영 김종민 대변인이 건강 문제로 대변인을 그만뒀고 이명박 정부의 이동관 대변인도 대변인 시절 대상포진을 앓았다.


떨어지는 대변인 몸값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0월 청와대 춘추관 2층 브리핑실에서 내각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후 홍보수석과 대변인이 분리되면서 대 변인의 역할은 그전보다 축소됐다. 동아일보DB

청와대 대변인이 정권 실세였던 김영삼(YS), 김대중(DJ) 정부 때와 비교하면 현재 청와대 대변인의 몸값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다.

YS, DJ 정부 시절만 해도 대변인은 각 언론사의 고위간부를 지낸 중진 언론인이나 중량감 있는 측근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항상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자리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져 선출직으로 나가는 최고의 관문으로 여기던 시기도 있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인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장관급)은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4선(選) 의원을 지냈다. 전남도지사 3연임에 성공한 박준영 지사도 김대중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다.

YS 정부 시절 주돈식 대변인은 문화체육부 장관과 정무1장관을 잇따라 지냈고 윤여준 대변인도 환경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DJ 정부 시절 박지원 대변인은 문화관광부 장관을 거쳐 막판에는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냈다.

노무현 정부부터는 홍보수석과 대변인이 분리되면서 대변인의 급도 낮아지고 연령도 젊어졌다. 그러나 ‘친노 386’이 그 자리를 독점해 실세 대변인 역할을 했다. 김만수 전 대변인은 현재 부천시장이고 김종민 전 대변인은 최근 충남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이명박 정부 때 김은혜 대변인은 38세에 청와대 대변인 자리를 맡은 뒤 억대 연봉을 받는 KT 전무로 이동하면서 낙하산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희정 대변인은 39세에 청와대 대변인을 맡은 뒤 총선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에필로그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지난 커버스토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자리는 운신의 폭이 역대 정권과 비교해 상당히 좁은 편이다. 이 때문에 누가 김행 전 대변인 후임으로 오든지 제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박 대통령과 이정현 홍보수석이 대변인에게 어느 정도 자율권을 줄 필요가 있다는 충고가 나오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정무감각, 기획능력, 소통능력의 삼박자를 갖춘 사람이 대변인에 임명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의 말을 듣는다. 자연스레 대변인의 이미지가 곧바로 대통령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불통’ 논란을 겪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명대변인’이 절실한 이유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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