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30cm 갓길서 노인들 위험한 보행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우산 사거리 인근의 흥성로에서 한 할아버지가 좁은 갓길을 걷는 모습이 위험천만해 보인다. 보성=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이동식 속도측정기의 화면에 뜬 숫자가 제한속도인 시속 80km를 훌쩍 넘겼다. 지난해 12월 23일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우산 사거리. 왕복 4차로인 흥성로와 왕복 2차로인 녹차로가 만나는 지점. 흥성로를 달리는 탱크로리의 속도를 잰 결과 제한속도 표지판이 무색해졌다. 옛 국도였던 흥성로에는 화물차 등 대형 차량이 주로 다닌다.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은 데다 양쪽이 다 내리막길로 연결돼 있어 과속이 잦은 곳. 이날 기자가 1시간 동안 속도를 잰 차량 14대 중 5대가 제한속도를 넘겼다.
● 교통안전 부문 ‘트리플 꼴찌’
전문가들은 전남지역의 교통사고 피해가 큰 것은 노인이 밀집한 농촌지역이라는 특성과 관련이 깊다고 지적한다. 전남 인구 190만6575명(2013년 6월 기준) 중 65세 이상 노인은 37만913명(19.45%)으로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비율이 가장 높다. 한산한 국도에 신체 반응이 느린 노인이 많이 다녀 보행자 사고가 많다는 분석이다. 이는 전남의 인구 10만 명당 노인과 어린이 사망자 수가 5.18명으로 전체 평균 1.97명의 약 2.6배로 높은 데서도 확인된다.
● 노인 교통안전 교육에 지자체 적극 나서야
전남의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준수율은 85.94점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인 16위. 보성 우산 사거리에서도 행인들이 횡단보도를 불과 100m 앞에 두고 무단 횡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시간가량 사거리를 지켜보는 동안 4명의 노인이 무단횡단을 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은 옛 도로가 많은 점도 보행자 사고를 유발한다. 기자는 보성군 회천면 율포리에서 득량면으로 이어지는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를 찾았다. 지난해 11월 13일 오전 6시 반경 약을 사러 읍내에 나가던 김모 씨(80)가 뒤따르던 화물차에 치여 숨진 곳이다. 김 씨가 걸어가던 길은 차선 밖 30cm 공간이 전부였다. 짐을 이고 갓길을 걷는 할머니 옆으로 차량들이 쌩쌩 지나가는 모습이 일상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나서서 노인 교통안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남도청은 지난해 11월까지 1만8500명을 대상으로 노인 교통안전 교육을 실시했고 올해에는 더 확대할 예정이다. 하지만 도내 전체 노인 인구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도청 관계자는 “지자체 예산만으로 관련 사업을 확대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남도청의 2012년 재정자립도는 16.3%에 불과하다. 박정관 교통안전공단 호남지역본부 연구교수는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버존 등 노인보호시설을 확대하고 지역 노인단체를 이용해 노인 교통안전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며 “중앙정부도 낙후지역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성=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