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날(10일) 밀린 전기료 다 내려고 했는데….”
조모 씨(39·여)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살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지하 전셋집이 8일 오전 2시 40분경 화재로 새카맣게 다 타 버렸기 때문이다. 전날 밤 켜 둔 촛불이 화근이었다. 조 씨는 형편이 어려워 지난해 8월부터 전기료를 내지 못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12월 말 조 씨 집에 장기 체납자를 대상으로 한 ‘단전 유예 조치’를 취했다. 전기 사용량을 시간당 660W로 제한하는 것. 이 때문에 조 씨 집은 7일 저녁부터 전깃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지하방은 암흑 천지가 됐다. 중학교 2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5, 2학년인 두 아들은 “무섭다”고 보챘다.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조 씨는 거실과 안방에 촛불을 한 개씩 켜 두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면서 거실의 촛불을 끄는 걸 잊었고 그곳에서 불이 난 것으로 소방 당국은 추정했다.
당장 머물 곳이 없게 된 조씨는 “집을 수리하는 데만 1000만 원 넘게 든다는데 이 추운 겨울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그는 1년 전 이혼하고 세 자녀를 혼자 키우고 있다. 2, 3년 전 장사를 하다 진 빚 때문에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매월 120만 원 정도 월급을 받지만 빚을 갚고 개인회생 비용을 내야 해 살림을 꾸리기에도 빠듯한 처지다. 애들 아빠도 빚이 있어 양육비를 줄 수 없는 형편이다. 조 씨가 전셋집을 마련할 때 시부모가 전세금을 마련해 준 게 전부였는데 그마저 잿더미가 된 거였다.
한전은 주택용 전기에 한해 체납 가구를 대상으로 단전 유예 조치를 취하고 있다. 원래 시간당 220W로 제한하는데, 혹한기에는 660W로 사용량을 늘려 준다. 한전 측은 660W면 전등, TV, 냉장고, 전기장판까지 사용할 수 있어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 씨 사례가 보여 주듯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전기담요 등 난방용 전기제품에 더 많이 의존하는 점을 고려해 한파 속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씨는 “한겨울만이라도 전류 제한을 풀어 주면 안 되는 건지…. 그랬다면 이 추운 날 온 가족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