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세 번째 추기경]새 추기경 탄생을 축하하며… 차동엽 신부
차동엽 신부
형님 같았던 신부님이 이제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임명 첫날 하루 종일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가운데 염 추기경은 “두렵고 떨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금 우리 사회 여러 진영으로부터 다양한 우려와 기대의 시선들이 날카로운 촉을 세우고 그에게로 쏠리고 있다. 나 역시 그중 한 가슴으로서 감히 그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나의 기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유쾌한 회상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3월, 그가 막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6000명이 넘는 보도진의 궁금증은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보이는 바티칸 내부 사안 및 노선에 집중돼 있었다. 바티칸 은행의 비리, 고위 성직자들의 스캔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현안과 관련한 교회의 입장 등에 대하여 과연 신임 교황은 어떤 대담한 정책을 펼칠지에 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매서운 눈초리로 교황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은 보란 듯이 이런 문제에 대해 모른 척하고 딴전을 부렸다. 그 대신 그는 거침없는 인간미로 세계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교황 전용 리무진 대신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자신의 가방을 스스로 챙기고, 호텔 숙박료를 직접 지불하고, 저녁이면 몰래 저잣거리로 나가 노숙인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등 착한 기행에 우선적으로 골몰했다. 그 결과 언론으로부터 ‘세계인의 본당 신부’라는 별칭을 얻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바티칸 내부의 개혁은 소리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다음으로, 염 추기경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낡은 틀을 깬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 참여’를 몸소 실행하는 추기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어느 편이건 신임 추기경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었으면 할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준 직분 ‘추기경’은 모든 신자의 추기경, 온 국민의 추기경이다. 따라서 국민 모두를 통합으로 끌어안는 치유의 영적 지도자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황희 정승의 어법’을 즐기는 어르신의 면모가 제격이겠다.
말다툼하던 두 명의 하인 중 한 명이 황희에게 하소연을 하자 “네 말이 옳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의 얘기를 듣고는 “네 말도 옳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부인이 “둘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은 옳고 한 사람은 틀려야지요.” 하니, 황희가 “당신 말도 옳소”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지만 여기에는 ‘뼈’ 있는 메시지가 있다. 세상 누구의 의견이건 들을 가치가 있고 인정해줘야 하는 옳음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염 추기경에게 통 큰 경청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만년의 고 김수환 추기경이 남겼던 유훈을 계승하는 추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 추기경은 정직(진실), 준법(정의), 배려(사랑), 이 세 가지를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꼽으면서 이것이 국민운동을 통하여 구현되기를 소망했다(‘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참조). 이 정신을 염 추기경이 계승해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질적 성장에 기여하는, 그리하여 그 혜택이 모든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까지 골고루 분배되는 이 나라의 영적 지도자로 활약해주실 것을 기도로써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