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격랑의 동아시아… 통일과 미래 전략, 고구려에 있다

입력 | 2014-01-14 03:00:00

[윤명철 교수의 고구려 이야기]<1>왜 지금 고구려인가




《 21세기를 대한민국의 시대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고구려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고구려사와 해양사 전문가인 윤명철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해양문화연구소장)는 “그렇다”고 말한다. 윤 교수는 고구려를 알면 국가 발전전략을 짤 수 있고, 고구려를 알면 민족의 정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통일 정책 또한 고구려 역사에 해답이 있다고 한다. ‘왜 고구려인가’에 대한 윤 교수의 생각으로 고구려 이야기 첫 회를 시작한다. 》     
     

고구려 국내성과 별도로 마련된 군사수비성 겸 임시 수도인 환도산성을 멀리서 찍은 모습. 산성하고분군 전체와 환도산성 내부가 보인다. 성벽 방어시설, 궁지, 고분등이 보인다. 윤석하 사진작가 제공


윤명철 교수

역사는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다. 나아가 미래다. 따라서 역사학은 “사실이 무엇인가?(what)”를 찾는 데서 끝나면 안 된다. “왜(why) 일어났는가?”를 규명하고 “어떻게(how)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작업이 역사학이다. 검증이 끝난 해결 모델을 찾는 것이다.

고구려 역사를 다시 꺼내는 것은 이런 역사학의 본질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한민족의 발전 모델로 고구려를 상정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한 일이다.

고구려는 멸망한 이후 현재까지도 부단하게 사실이 왜곡되고 존재가 말살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며 한민족의 고구려 계승을 부정했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이다. 그 전까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고구려의 존재와 가치를 중국이 일깨웠기 때문이다. 얼마나 중요한 역사이기에 자국에 편입하려 하겠는가.

고구려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이다. 700년 이상 존속했다. 고구려 민중의 자의식은 절정에 달했다. 문화는 한껏 융성했다. 대륙과 해양이라는 광대한 영토를 유기적으로 관리했던 ‘해륙국가’였다. 고구려의 중요한 가치 또 하나. 고구려는 통일에 가장 근접했던 국가였다.

21세기 전반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격동기다. 문명의 내용과 질이 대전환을 하고 있다. 세계 질서도 재편 중이다. 특히 동아시아는 ‘혼돈의 각축장’이다. 일본은 군사비 지출 세계 4위 해군력 2위를 바탕으로 평화헌법 폐지, 집단자위권, 핵무장의 노골화, 주변 국가와의 영토 분쟁 등 여러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자국과 미국의 ‘주요 2개국(G2) 시대’를 선언하며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려 한다. 일본과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난사(南沙) 군도와 시사(西沙) 군도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어도의 영토 분쟁화도 시도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도 동아시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 정치적으로 중국을 외곽 포위하면서 힘의 축을 동아시아로 이동시키고 있다. 러시아 또한 신동방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북한의 미래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다. 냉전이 끝났다지만 동아시아는 그렇지 않다. 또 다른 형태의 냉전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마저 느껴진다.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한민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구려의 역사를 다시 꺼내야 할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구려의 성공 전략이 곧 오늘날의 미래 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구려는 ‘대안’이다. 어떤 분야에서?

고구려 장군총. 고구려의 사상과 논리 미학의 결정체로 인정받고 있다. 윤명철교수제공

첫째, 국가 발전 전략이다. 동아시아는 만주와 중국 대륙, 한반도, 일본 열도와 함께 삼면이 해양으로 돼 있다. 지중해적 형태다. 고구려는 지정학적으로 북방 유목민족, 중국, 백제와 신라에 포위돼 있었지만 국제질서의 틀을 간파하고 육지뿐 아니라 해양까지 발전시켰다. ‘동아지중해 중핵(CORE) 조정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둘째, 경제 영토의 장악과 물류망의 확장이다. 요동 지방은 철, 광산물 등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경제적 요충지였다. 북만주의 초원과 동만주의 숲은 말, 소와 같은 가축, 나무, 질 좋은 모피 등 고부가가치 상품의 생산지였다. 고구려는 여기에 육로와 해로 교통망을 발전시켜 물류 허브를 구축했다. 대륙과 해양을 망라해 쌍방무역, 다자간 중계무역도 활발했다. 현재의 한반도종단철도(TKR),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해양길(SEA-LANE)을 연계시킨 것과 동일한 시스템이다.

셋째, 정체성과 자의식이다. 국가와 민족이 발전하려면 자의식은 필수조건이다. 열등감에 빠져 있고, 배타적이고, 능동성이 결여된 국가는 침체하거나 멸망한다. 조선처럼. 고구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변 국가들과 대등한 자세에서 관계를 맺었다. 창조적으로 사고했다.

넷째, 세계관이다. 고구려를 알면 좁은 ‘반도사관’을 벗어날 수 있다. 거시적인 사유, 범공간적인 행동 방식, 국제질서 등 더 큰 범주에서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우리 역사는 바다에 포위된 수동적 역사가 아니다. 만주 일대와 해양을 아우른 고구려가 그것을 증명한다.

다섯째, 통일의 문제이다. 최초의 조선인 고조선, 즉 ‘원조선’의 후손임을 표방하며 건국된 고구려에 통일은 그 자체가 명분이었고, 국시였다. 따라서 민족 통일의 명분과 역사적 정당성, 추진 방식과 전략을 배울 수 있다. 정치체제나 국토를 통합하고 분단 체제를 극복하자며 근시안적으로 통일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통일, 세계관의 통일, 문화의 통일, 정치의 통일, 영역의 통일이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고구려 역사를 알아둬야 할 이유다. 다음 회에는 고구려 최고의 국왕인 광개토대왕의 이야기를 다루도록 하겠다.

윤명철 교수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