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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해]인터넷 조문과 1100만 원 조의금

입력 | 2014-01-16 03:00:00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해외특파원이 되는 비결’을 강의한 백발 노장의 모리스 로젠버그 교수가 2007년 10월 타계했을 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남미 등지에서 AP 특파원을 30년 넘도록 한 베테랑 저널리스트였다. 지역 신문인 ‘뉴스앤드옵서버’가 그의 부음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었다. 당시 방문학자로 그의 강의를 들었던 기자는 기사를 보다가 밑에 딸린 ‘방명록’란을 발견했다. 그를 추모하는 지인들의 글이 많았다. 기자도 한 학기 수업 청강을 허락해 준 교수에게 감사했다는 얘기와 함께 명복을 비는 글을 인터넷에 남겼다.

▷열흘쯤 뒤 한 통의 e메일이 왔다. 로젠버그 교수의 딸 제인 씨였다. “아버지를 기억해줘서 감사합니다. 어려울 때 많은 힘이 됐습니다. 한국에서 온 기자가 아버지 수업을 듣는다고 들었는데 바로 당신이었군요.” 알고 보니 제인 씨는 기자의 비자서류에 서명해 준 학교 책임자였다. 인터넷 조문을 한 사람들에게까지 e메일로 일일이 개별적인 감사편지를 보낸 듯했다.

▷기자가 워싱턴 특파원 시절 알고 지내던 한 교포 의사가 부친상을 당해 조문 간 적이 있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장례식장엔 친지와 가까운 지인들이 참석했다.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렸다. 장례식장 스크린에 고인이 살았을 때 찍은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두 아들은 추모객들 앞에서 아버지 기억을 되살리며 눈물을 훔쳤다. 빈소를 차리거나 조의금을 받지는 않았다.

▷토마토저축은행의 세무조사를 맡았던 서울지방국세청 한 간부가 이 저축은행 경영진으로부터 조의금으로 1100만 원을 받았다가 해임되자 복직 소송을 냈다. 법원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힘센 국세청 간부가 아니었다면 누가 선뜻 조의금으로 1100만 원을 내놓았을까. 뇌물성 거액 조의금을 받고도 복직 소송을 냈으니 염치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다.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 놓거나 인터넷 추모 글을 남기는 미국의 조문 문화에서 배울 바가 적지 않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