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핵심 의미… 중추가 되는 기관, 사람, 언행 일컬어
추기경(樞機卿)은 라틴어 카르디날리스(cardinalis)의 번역어다. 이는 경첩을 의미하는 라틴어 카르도(cardo)에서 파생했다.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은 직위를 뜻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를 추기경, 중국에서는 추기주교로 번역한다. 경(卿)은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높은 벼슬을 뜻한다. 그렇다면 추기(樞機)는 무슨 뜻일까.
이 단어는 현대어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유교문화권에선 사용 빈도가 제법 높은 단어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87회나 등장한다.
추기는 이 단어들보다 격이 한 단계 높다. 유교의 비조인 공자가 주역의 경문을 해석했다고 알려진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과 행동은 군자의 추기다. 추기가 발하는 것이 영욕의 주요 요인이다(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로 유명해진 어휘이기 때문이다. 조선 정종 때 권근의 상소문에 나오는 “인주(人主·임금)의 한 마음은 백성을 다스리는 본원이요, 하늘을 감동시키는 추기(樞機)이니, 바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표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에 따르면 추기경은 곧 교황 언행의 담지자이자 교황의 영욕이 달린 존재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 지명된 추기경들에게 서한을 보내 “겸손의 길을 걸은 예수의 모범을 뒤따라 달라”며 축하연 자제를 부탁한 것도 절로 이해가 된다. 현지 토착화를 통한 포교를 택한 가톨릭의 모범적 번역 사례라 할 만하다.
한편 추기경을 영어로는 카디널(cardinal)로 표기하는데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팀명과 같다. 여기서 카디널은 북미에 서식하는 홍관조를 뜻한다. 이 새의 선홍색 빛깔이 유럽 이민자들의 눈에 추기경을 상징하는 선홍색 의상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