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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 곳곳에 여성 비밀코드…누나들은 왜 울었을까?

입력 | 2014-01-16 11:26:00


tvN 제공

17일 종영되는 tvN의 '꽃보다 누나' 신드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꽃보다 누나'는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4명의 중견 여배우와 그들의 여행을 안내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짐꾼' 이승기의 10일 간의 크로아티아 여행이 기본 줄거리다. 그러나 이 프로에는 여성의 비밀을 이해할 만한 코드가 곳곳에 숨어 있다. '여행 패션' '숙소와 화장실에 민감한 여자들' '성당의 눈물' '쇼핑' '고데기' 등이 여성의 비밀을 푸는 아이템들이다.

그런데 모든 장면이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크다. 여성들 중에는 공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던 것 같은데 남성들, 특히 30대 이상 연령층에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반응도 꽤 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이 프로를 봤던 20~50대의 여성들은 4명의 여배우들이 어떻게 '여행의 일상'을 보내는지, 또 여행을 통해 어떻게 변하는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봤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반면 "성공 일변도, 경쟁 일변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일상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들의 보편적인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 시청률에 따르면 40대 여성 시청률이 8.23%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30대 여성 6.38%였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40대 3.75%, 30대 2.52%로 여성 시청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 박사는 "남성이라도 예민한 감수성과 감정을 가졌다면 이 프로에 흥미를 느끼고 재밌게 봤을 것 같다"고 했지만 박영주 우석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성은 대체로 이성적으로 사고하려는 경향이 있고, 정서가 여성에 비해 주로 우뇌에 분포돼 있어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을 다룬 이 프로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tvN 제공

여성과 남성의 다른 반응을 살펴보자. "터키 공항에서 꽃보다 누나와 같은 상황을 겪었어요. 내가 경험한 상황이 사람만 바뀌었지 첫 회 때 그대로 재현되니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봤죠. 미혼 생활을 즐기는 편인데 여행에 대한 정보도 있고 볼 것도 많아 아주 만족했어요." 홍보우먼 임명숙 차장(49) 얘기다. 반면 매주 금요일 밤 집에 들어가면 50대의 어머니와 20대 후반의 여동생이 하도 열심히 보길래 따라봤다는 30대 홍보맨 하병훈 대리는 "여배우들이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을 갖고 봤어요. 별로 웃기지도 않았어요. 나중에는 여자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안 하면 장가 못 간다는 아버지 말씀에 찔려서 보긴 했지만 별 재미는 느끼지 못했어요."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의 풍광과 아드리아 해의 정경을 두고도 여자와 남자의 반응은 같지 않았다. 하 대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상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기자도 하 대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임 차장은 기자가 크로아티아 여행 상품을 출시한 여행사가 있다고 하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은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공감했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의 '평범한' 행동을 '유별난' 행동으로 이해했다. 윤여정 씨가 고장난 고데기 때문에 멘붕에 빠졌던 게 대표적이다. . "머리를 매만진 후 하루를 시작하는 윤여정 씨에게 고데기가 없어 갈기 머리를 남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고데기는 정말 중요한 물건인 거죠"라고 임 차장은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하 대리는 "고데기가 고장 났으면 모자로 머리를 감출 수도 있는데 너무 연연해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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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전문가인 액티브 코칭(Active Coaching) 연구소 김경화 이사는 윤여정의 패션에 대해 "시크한 이미지의 블랙 코트에 데님, 블랙 미들 부츠에서부터 경쾌한 여행 느낌을 살려주는 스트라이프 티셔츠까지 그 어떤 것도 그녀가 입으면 그대로 베스트 트래블 룩이 됐다. 또래 여성들은 자극을 받고, 질투도 하며,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윤여정의 영향력은 또래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20대 여대생 이지원 씨는 "윤여정의 당당함과 똑똑함에 끌렸고", 30대 홍보우먼 오희진 씨는 "패션 아이템 매칭이 좋아 윤여정 씨의 체형 결점이 커버됐다"고 평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좋아 이 프로를 봤던 여성도 상당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반면 하 대리와 기자는 숙소가 나쁘다고 불평하고 화장실을 중히 여기는 그에게 전적으로 공감하기 힘들었다. 하 대리는 "여행이란 게 고생하는 맛도 있는 것인데 왜 그리 숙소에 집착하느냐"고 고개를 갸웃했다. 기자는 윤여정 씨가 며칠 만에 '일 보기'에 성공한 후 "쌍둥이를 낳았다"라고 하는 데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민감해 장소가 바뀌면 변비에 걸린다는 상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윤여정 씨의 '일 보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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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눈에는 원색의 패딩만 입고 나오는 김자옥의 패션이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김 이사는 "'언제나 소녀이고 싶은 긍정 아이콘, 둘째 누나'라는 프로그램 속 그녀의 콘셉트에 딱 맞게 김자옥의 패션은 밝고 명랑하다. 핑크, 옐로 등 화려한 원색이 주는 발랄함이 자그마한 그녀를 더욱 여성스럽고 사랑스럽게 표현해 준다"고 극찬한다.

여배우들 전부가 울었지만 이승기는 그런 배우들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던 자그레브 대성당의 눈물에는 어떤 코드가 숨겨져 있는 걸까. 김 박사와 박 교수는 "여배우들은 다른 여자들에 비해 감수성이 뛰어나고 감정적인데 자그레브 대성당의 분위기에 압도돼 '신성(神性)에 안기고픈'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남에게 보여주는 삶 속에 숨어있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본연'과 마주치게 돼 울컥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매우 어려운 분석인데 간단히 얘기하면 '꾸밈'을 버리고 '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얘기 같다. 김 박사는 여기에다 "정서적인 반응은 복합적이지만 여성들은 이런데 익숙해져 있기에 여배우들을 보며 여성 시청자들도 많은 공감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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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대성당의 눈물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남성들도 "기쁘고 행복해야 해"라는 관광객의 말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선글라스까지 꼈던 이미연의 눈물에는 많이들 공감했다. 김정일 박사는 "한국 사람들은 각박한 환경과 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탓에 행복이란 말을 들으면 울컥해집니다. 남성보다도 여성들이 더 그런 경우가 많지요."

박영주 교수는 "미디어는 가능하면 남성과 여성의 코드를 균형적으로 배분해 여성과 남성을 이어주는 '라포(RAPPORT:심리학에서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조화로운 일치감)'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일 박사는 남성들도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중 한 방법으로 '기다림'을 권유했다. 이승기가 구두를 쇼핑하는 김자옥을 20여 분간 기다려준 것처럼 여성을 위해 기다려 보는 것도 여성을 알게 만드는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종승 전문기자(콘텐츠기획본부)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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