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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장면이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크다. 여성들 중에는 공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던 것 같은데 남성들, 특히 30대 이상 연령층에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반응도 꽤 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이 프로를 봤던 20~50대의 여성들은 4명의 여배우들이 어떻게 '여행의 일상'을 보내는지, 또 여행을 통해 어떻게 변하는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봤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반면 "성공 일변도, 경쟁 일변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일상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들의 보편적인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 시청률에 따르면 40대 여성 시청률이 8.23%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30대 여성 6.38%였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40대 3.75%, 30대 2.52%로 여성 시청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 박사는 "남성이라도 예민한 감수성과 감정을 가졌다면 이 프로에 흥미를 느끼고 재밌게 봤을 것 같다"고 했지만 박영주 우석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성은 대체로 이성적으로 사고하려는 경향이 있고, 정서가 여성에 비해 주로 우뇌에 분포돼 있어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을 다룬 이 프로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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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크로아티아의 풍광과 아드리아 해의 정경을 두고도 여자와 남자의 반응은 같지 않았다. 하 대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상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기자도 하 대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임 차장은 기자가 크로아티아 여행 상품을 출시한 여행사가 있다고 하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은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공감했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의 '평범한' 행동을 '유별난' 행동으로 이해했다. 윤여정 씨가 고장난 고데기 때문에 멘붕에 빠졌던 게 대표적이다. . "머리를 매만진 후 하루를 시작하는 윤여정 씨에게 고데기가 없어 갈기 머리를 남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고데기는 정말 중요한 물건인 거죠"라고 임 차장은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하 대리는 "고데기가 고장 났으면 모자로 머리를 감출 수도 있는데 너무 연연해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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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의 영향력은 또래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20대 여대생 이지원 씨는 "윤여정의 당당함과 똑똑함에 끌렸고", 30대 홍보우먼 오희진 씨는 "패션 아이템 매칭이 좋아 윤여정 씨의 체형 결점이 커버됐다"고 평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좋아 이 프로를 봤던 여성도 상당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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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 전부가 울었지만 이승기는 그런 배우들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던 자그레브 대성당의 눈물에는 어떤 코드가 숨겨져 있는 걸까. 김 박사와 박 교수는 "여배우들은 다른 여자들에 비해 감수성이 뛰어나고 감정적인데 자그레브 대성당의 분위기에 압도돼 '신성(神性)에 안기고픈'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남에게 보여주는 삶 속에 숨어있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본연'과 마주치게 돼 울컥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매우 어려운 분석인데 간단히 얘기하면 '꾸밈'을 버리고 '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얘기 같다. 김 박사는 여기에다 "정서적인 반응은 복합적이지만 여성들은 이런데 익숙해져 있기에 여배우들을 보며 여성 시청자들도 많은 공감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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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 교수는 "미디어는 가능하면 남성과 여성의 코드를 균형적으로 배분해 여성과 남성을 이어주는 '라포(RAPPORT:심리학에서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조화로운 일치감)'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일 박사는 남성들도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중 한 방법으로 '기다림'을 권유했다. 이승기가 구두를 쇼핑하는 김자옥을 20여 분간 기다려준 것처럼 여성을 위해 기다려 보는 것도 여성을 알게 만드는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종승 전문기자(콘텐츠기획본부)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