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신영록 사태 막으려 축구의학회도 만들었죠”
안용진 원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인천 안용진내과의원에서 트래핑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의사축구연맹 사무총장인 안 원장은 2014 브라질 월드컵과 함께 열리는 ‘세계의사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안용진 안용진내과의원 원장(56)은 요즘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현지 시간 7월 13일) 하루 전에 끝나는 제20회 세계의사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 전 세계 의사들이 모여 벌이는 일명 ‘의사축구 월드컵’에서 사상 첫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장면을 상상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 의사축구계에서도 세계의 벽은 높아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지만 그 꿈이 있기에 2014년이 즐겁고 설렌다. 전 국민이 한국 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듯 열렬하게 대표팀을 응원하면서도 월드컵의 현장에서 의사축구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안 원장은 한국의사축구연맹 사무총장으로 약 8년째 한국 의사축구팀을 이끌고 있다.
안 원장이 세계의사축구대회와 연을 맺은 것은 2006년이다. 독일 월드컵을 3개월여 앞둔 3월경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일에서 의사 월드컵이 열리는데 참가하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대체의학이 발달한 독일의사협회 측에서 처음엔 대한한의사협회로 문의를 했는데 축구를 하는 한의사가 적어 대한의사협회로 다시 넘어온 것이었다.
“세계의사축구대회는 축구만 하는 게 아니다. 경기 중의 부상 방지와 재활, 영양 등 축구 전반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우정도 쌓는다. 우리도 많이 배우지만 유럽 등 선진국 의사들이 한국의 의학 수준에 놀라기도 한다. 이제 한국 의료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의사 월드컵’은 4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컵 축구대회와 달리 매년 열린다. 지구촌 전역에서 8∼12개국 의사팀이 참가해 자웅을 겨룬다. 한국의 실력은 중하위권. 2006년부터 단장 겸 주장으로 참가하고 있는 안 원장은 2009년 대회의 한국 유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2008년 리투아니아 대회의 캡틴회의에서 차기 개최지를 논의할 때 한국, 잉글랜드, 스웨덴, 헝가리 등 4개국이 개최 신청을 했다.
안 원장은 “당시 한국의사축구연맹도 일정한 궤도에 올라섰고 분위기도 좋았다. 미리 예산도 배정했고 서울시와 협의해 운동장 섭외도 끝냈다. 그때 유치하지 못하면 영영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서 개최하지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고 배수진을 치고 유치를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위의 단체사진은 20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의사축구대회 때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찍은 것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충주 삼원초교 4학년 때까지 학교 대표 축구선수로 뛰었던 안 원장은 중고교 때 공부에만 전념하다 중앙대 의대 시절부터 다시 축구에 빠져 들었다. 의대 체육대회에서 우연히 축구 경기에 출전했는데 부모님의 만류로 공부만 하면서 잊혀졌던 ‘축구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전문의 과정과 군의관 시절 다시 잠시 잊고 지냈지만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둔 2001년 국내 최초의 의사축구단 ‘FC 메디칼스’를 만들었다. 창단 멤버가 50명이 넘을 정도로 축구를 갈망하는 의사들이 넘쳤다. 그해 한국의사축구연맹도 창립해 전국에서 축구를 즐기는 의사들을 모았다. 이를 기폭제로 해 지역별 팀들도 속속 만들어졌다. 매년 전국대회를 2차례씩 열고 있는데 전국에서 12∼14개 팀이 출전해 실력을 겨룬다.
안 원장은 지난해부터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 위원을 맡아 ‘축구 의학’ 연구를 시작했다. 2006년 ‘의사 월드컵’에 함께 출전했던 임영진 한국의사축구연맹 회장(61·경희의료원 원장)이 의무분과위원장이 돼 그를 불러들였다. 의사축구연맹 초창기부터 활동한 축구 마니아인 임 회장은 ‘순수하게 축구를 좋아하는 의사들’로 의무분과위원회를 꾸몄다. 전체 16명의 의무위원 중 절반 이상이 축구를 즐기는 의사들이다. 안 원장은 축구 발전을 돕는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생각에서 지난해 10월 대한축구의학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 축구가 세계 최고의 인기 종목이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지만 그에 대한 의학적 연구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해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만든 것이다. 그는 ‘제2의 신영록 사태’ 방지에 최우선 순위를 둘 계획이다. 프로축구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동하던 신영록은 2011년 5월 대구 FC와의 경기 도중 급성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무산소 뇌손상으로 세밀한 움직임에 장애가 있어 아직 선수로 복귀하지 못한 채 재활에 힘쓰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도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동료가 바로 심폐소생술을 해준다면 신영록 선수가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동료들이 쓰러진 선수의 호흡을 도와줄 수 있다면 그 사이 응급구조대가 투입돼 뇌손상을 막을 수 있다. 뇌는 조금만 산소공급이 멈춰도 크게 망가진다.”
안 원장은 그동안 축구협회가 위촉한 의료진이 내과나 신경외과보다는 정형외과 의사들 위주로 구성됐던 것도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심폐기능을 포함해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원회가 구성돼야 하는데 눈앞의 부상 방지와 재활 치료에 치우쳤던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신임 의무분과 위원들과 함께 사전 신체검사를 엄격하게 실시하는 등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다쳤을 때의 대처법까지 일련의 과정을 시스템화해 철두철미하게 관리할 계획이다.
70세가 넘어서도 계속 축구를 하고 싶다는 안 원장은 “나이 드신 분들이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철저한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면서 자신의 예를 들며 ‘100세 시대 스포츠 즐기기’에 대한 조언을 했다.
‘평일엔 기초체력을 키운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고 달린다. 주 1, 2회 웨이트트레이닝도 필수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에 힘이 있어야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 날 때마다 스트레칭 체조도 한다. 몸이 굳어지면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축구를 할 땐 무리한 돌파와 태클을 하지 않는다. 공중볼 다툼도 자제한다. 축구를 즐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가 좋아하는 축구를 평생 못할 수도 있다. 다치지 않고 아직도 축구를 할 수 있는 것에 늘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천=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