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진화/마이클 L 파워, 제이 슐킨 지음·김성훈 옮김/520쪽·2만5000원·컬처룩비밀을 풀 열쇠는 ‘인간의 뇌’
음식은 날로 기름지고 달콤해지는데 몸 쓸 일은 없어지고 있다. 진화 과정에서 얻게 된 인간의 지방 비축 능력은 현대인들에게 비만의 저주로 돌아왔다. 컬쳐룩 제공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에서 ‘비만에 관해 나온 책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현대인들에게 마치 죄악이나 질병처럼 여겨지는 비만에 대한 상식에 도전장을 내민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 연구원 마이클 파워와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연구교수 제이 슐킨은 인간생물학(human biology)의 관점에서 우리를 비만으로 이끈 환경과 생명활동의 상호작용을 규명한다.
이들은 비만을 이해하려면 우선 우리의 몸이 진화라는 과거의 유산을 짊어진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유인원을 포함해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신진대사를 통해 지방을 만들어 내는 능력과 체내에 지방 조직을 저장하는 능력이 발달돼 있다. 인간의 갓난아기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살찐 상태로 태어난다. 왜 유독 인간만 이런 걸까?
하체 비만으로 고민인 여성들을 위로해 주는 내용도 있다. 임신 기간 태아의 뇌 성장에 필요한 지방 공급을 맡은 여성이 남성보다 비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생식기관에 가까운 하체가 지방의 주요 저장고 역할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 그렇다. 영양학부터 내분비학, 해부학, 생리학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다 보니 호르몬이나 효소 이름 같은 전문용어에 익숙지 않은 독자가 읽기에 어려운 대목도 나온다. 하지만 인간 생명체의 진화와 비만의 관계라는 큰 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만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는다고 해서 저자들이 비만을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과거 식량 부족 같은 환경적 요인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비만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에너지를 쓰는 신체활동은 줄고 음식은 넘쳐나면서 에너지 균형이 깨져 본격적으로 확산됐다고 말한다. 지방이 생식에 도움을 준다지만 오늘날 비만은 불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비만에 대한 저자들의 대책은 모범답안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우리 몸이 기본적으로 활발한 생활 방식에 맞춰 설계되고 진화된 만큼 더 많은 신체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면 음식 섭취에 대한 걱정은 저절로 덜어진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음식 섭취를 줄여 체지방량, 혈당 같은 한두 요소의 수치를 바로잡는 방식으로는 수면, 대사량, 호르몬 같은 다른 변수에 교란을 가져와 오히려 신체 균형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현대인 중에 이런 위험성을 모르고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을까?
책장을 덮고 나면 오늘 밤 맥주 한잔 약속을 깨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도감과 동시에, 소파 침대와 찰떡궁합이 된 무거운 엉덩이를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부지런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밀려온다. 퇴근 후 달밤 옥상에서 줄넘기라도 돌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