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연금 두 개의 노후<上>
《 ‘쥐꼬리’ 연금을 받는 국민들에게 공무원연금은 ‘특혜’로 여겨진다. 받는 돈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형평성과 국가재정 차원에서 더 늦기 전에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연급 수급자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다. 노후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공무원연금도 풍족한 삶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
공무원연금 月300만원 윤정택씨
자가용만 처분한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참석하던 모임을 현직 때 절반 수준인 5개가량으로 줄였다. 그래도 회비 명목으로 월평균 20만 원가량이 나간다. 부인의 모임까지 더하면 5만 원 정도가 추가된다.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여긴다. 발길을 끊은 모임에서는 “퇴직하더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뒷담화’가 들려왔다.
하지만 경조사비는 더 늘어났다. 현직 때는 정부 지침에 따라 3만 원까지만 쓸 수 있었다. 퇴직하자 도저히 5만 원 이하 봉투를 건넬 수가 없었다. 그의 두 자녀 역시 모두 결혼 전인 것도 신경이 쓰인다.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가 전부다. 1980, 90년대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여러 차례 갈아타면서 아파트 한 채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시가 3억5000만 원 아파트의 절반 이상은 은행 대출이다. 월 이자만 80만 원이다. 100m² 규모 아파트로 관리비가 월 20만 원인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현금자산이라고는 3000만 원짜리 마이너스통장뿐이다. 그는 “저축을 하고 싶어도 할 돈이 없었다”고 말했다.
식비는 매달 80만 원 정도로 전과 비슷한 편이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차례 즐기던 외식을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쇠고기는 사라지고 삼겹살과 돼지갈비가 주 메뉴다. 가격이 저렴한 ‘막썰어’ 횟집을 찾는다.
윤 씨는 퇴직 뒤 노후설계에 대해 공부했다. 지금은 공무원연금공단을 통해 봉사활동도 하고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노인복지관에서 강의도 한다. 훗날 새로운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미래를 대비할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다.
“지금처럼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 100세까지 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적어도 80세까지 어떤 방식이든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그런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 국민연금 月90만원 윤양주씨 ▼
본봉에 수당과 보너스까지 합치면 월평균 400만 원가량 손에 쥐던 그의 호주머니는 퇴직 후 금세 가벼워졌다. 퇴직금으로 6000만 원을 받았지만 아들 학자금 대출과 주택 구입 때 진 은행 빚을 갚으니 남은 게 없었다.
새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경비원 자리가 종종 났지만 30년 직장생활 기간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해온 터라 밤일은 죽기보다 싫었다.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2억4000만 원가량 하는 빌라 한 채와 고향인 전남 광양에 1980m²(약 600평)가량의 땅이 있지만 팔아 현금을 만들 수 없는 곳이다.
윤 씨는 “국민연금과 집 한 채는 있으니 노숙인이 될 우려는 없다. 하지만 큰 병에 걸려 병원비라도 들어가면 가정경제가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퇴직 뒤 ‘안 먹고 안 쓰자’는 이제 윤 씨 가족의 생활지침이 됐다. 먹을거리와 생필품은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에서 해결한다. 퇴직 전에는 대형마트에서 쓰는 비용만 월 80만∼90만 원 됐지만 재래시장을 이용하면서 이 돈을 70만 원대 초반까지 줄일 수 있었다. 주 반찬은 1000원짜리 2봉지면 세 끼 반찬을 해결할 수 있는 나물이다. 단백질은 고기보다는 주로 제철 생선을 통해 섭취한다. 고기가 당기면 돼지 목살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다. 외식은 1년 중 아내 생일이나 명절을 빼면 거의 하지 않는다.
개인 용돈도 대폭 줄였다. 종종 이용하던 택시를 끊은 지는 오래다. 피우던 담배도 3000원대에서 2500원짜리 ‘더 원’으로 바꿨다. 친목 모임도 초등학교 동창회, 퇴직자 모임 등 2개로 줄였다.
퇴직 뒤 2년간 몸치장에 돈을 쓴 건 딱 두 번뿐이다. 조카 결혼식에 가려고 서울 동대문 양복점에서 8만 원짜리 검은 양복을 맞췄다. 산책 나갈 때 입을 3만 원짜리 아웃도어 의류도 장만했다.
여가시간에는 신당동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남산을 주로 찾는다. 북한산 등 근교 산을 가면 차비가 들기 때문이다. 점심은 산책로 근방 5000원짜리 산채비빔밥으로 때운다. 1000원 하는 식당 커피 값을 아끼려고 3km 정도 떨어진 자판기까지 가서 300원짜리 커피를 빼먹는다. 오후엔 가까운 한옥마을에서 각종 문화공연도 즐긴다. 윤 씨는 “남산은 내게 돈 안 드는 최고의 놀이터”라고 말했다.
윤 씨는 최근 걱정이 하나 생겼다. 아내가 대형마트에서 두 달가량 쉬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현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은 통장에 든 200만 원이 전부. 국민연금액만으로 두 달을 버텨야 한다.
윤 씨는 요즘 들어 세무직 공무원으로 퇴직한 동창생이 부럽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현직 때는 자신만만했지만 3배가량 많은 연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든다.
<특별취재팀>
▽팀장 하종대 부국장
▽이진 국제부장, 이성호(사회부) 유근형(정책사회부) 이원주(경제부) 김경제 변영욱 기자(사진부)
▽국제부 박형준 전승훈 신석호 특파원
▽편집국 김아연 매니저
▽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 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
석재은 한림대 교수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