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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車팔고 외식 줄여”… “남산 걷죠, 외식은 연중행사”

입력 | 2014-01-20 03:00:00

두 개의 연금 두 개의 노후<上>




《 ‘쥐꼬리’ 연금을 받는 국민들에게 공무원연금은 ‘특혜’로 여겨진다. 받는 돈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형평성과 국가재정 차원에서 더 늦기 전에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연급 수급자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다. 노후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공무원연금도 풍족한 삶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

공무원연금 月300만원 윤정택씨

윤정택 씨(63)는 36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2010년 퇴직했다. 퇴직하고 가장 먼저 10년 넘게 타고 다닌 자가용을 팔아치웠다. 현직 때의 절반에 불과한 수입으로 자가용을 굴리는 것은 ‘사치’였다. 소형차라도 매달 평균 50만 원의 유지비가 들어간다. 그는 “(자가용을 갖고 있으면) 은퇴 뒤엔 도저히 생활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지역의 한 기초자치단체에서 9급 서기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국장급인 4급 서기관으로 마쳤다. 시골에서 태어나 국장까지 지냈으니 제법 성공한 편이다. 하지만 퇴직 뒤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 그의 고정수입은 공무원연금뿐이다. 매달 300만 원가량이 입금된다. 이걸로는 모자라 부인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100만 원가량을 보태고 있다. 윤 씨는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재직 중에는 맞벌이도 하지 않아 연금만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뿐”이라고 말했다.

자가용만 처분한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참석하던 모임을 현직 때 절반 수준인 5개가량으로 줄였다. 그래도 회비 명목으로 월평균 20만 원가량이 나간다. 부인의 모임까지 더하면 5만 원 정도가 추가된다.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여긴다. 발길을 끊은 모임에서는 “퇴직하더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뒷담화’가 들려왔다.

하지만 경조사비는 더 늘어났다. 현직 때는 정부 지침에 따라 3만 원까지만 쓸 수 있었다. 퇴직하자 도저히 5만 원 이하 봉투를 건넬 수가 없었다. 그의 두 자녀 역시 모두 결혼 전인 것도 신경이 쓰인다.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가 전부다. 1980, 90년대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여러 차례 갈아타면서 아파트 한 채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시가 3억5000만 원 아파트의 절반 이상은 은행 대출이다. 월 이자만 80만 원이다. 100m² 규모 아파트로 관리비가 월 20만 원인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현금자산이라고는 3000만 원짜리 마이너스통장뿐이다. 그는 “저축을 하고 싶어도 할 돈이 없었다”고 말했다.

식비는 매달 80만 원 정도로 전과 비슷한 편이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차례 즐기던 외식을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쇠고기는 사라지고 삼겹살과 돼지갈비가 주 메뉴다. 가격이 저렴한 ‘막썰어’ 횟집을 찾는다.

윤 씨는 “공무원연금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들을 때마다 ‘남의 속사정도 모르는 소리’라는 억울한 마음이 든다. 지금 공무원연금을 받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처럼 ‘박봉’에 시달렸다. 공무원 급여는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현실화됐다. 윤 씨는 “지금 국장급 공무원 연봉이 70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말단부터 시작해 국장이 될 확률은 10%에 그치고 대부분이 6급 이하로 정년퇴직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직의 유혹을 떨치고 오직 자긍심 하나로 버틴 공무원들에게 공무원연금은 ‘최후의 보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씨는 퇴직 뒤 노후설계에 대해 공부했다. 지금은 공무원연금공단을 통해 봉사활동도 하고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노인복지관에서 강의도 한다. 훗날 새로운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미래를 대비할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다.

“지금처럼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 100세까지 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적어도 80세까지 어떤 방식이든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그런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 국민연금 月90만원 윤양주씨 ▼

서울의 한 준(準)공기업을 27년간 다니다 2011년 퇴직한 윤양주 씨(61). 최근 그는 현직 때 자신을 따르던 후배의 모친상 소식을 모른 척해야 했다. 그의 경조사를 살뜰하게 챙기던 후배라 특히 마음이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퇴직자에게 가장 무서운 소식이 경조사”라며 “다 챙기려면 월평균 30만 원 이상 든다”고 말했다.

본봉에 수당과 보너스까지 합치면 월평균 400만 원가량 손에 쥐던 그의 호주머니는 퇴직 후 금세 가벼워졌다. 퇴직금으로 6000만 원을 받았지만 아들 학자금 대출과 주택 구입 때 진 은행 빚을 갚으니 남은 게 없었다.

국민연금이 생긴 1988년부터 꼬박꼬박 보험료를 부은 덕분에 지금 월 90만 원가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 아내가 대형마트 판매원으로 일하며 매달 110만 원가량을 생활비에 보탠다.

새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경비원 자리가 종종 났지만 30년 직장생활 기간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해온 터라 밤일은 죽기보다 싫었다.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2억4000만 원가량 하는 빌라 한 채와 고향인 전남 광양에 1980m²(약 600평)가량의 땅이 있지만 팔아 현금을 만들 수 없는 곳이다.

윤 씨는 “국민연금과 집 한 채는 있으니 노숙인이 될 우려는 없다. 하지만 큰 병에 걸려 병원비라도 들어가면 가정경제가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퇴직 뒤 ‘안 먹고 안 쓰자’는 이제 윤 씨 가족의 생활지침이 됐다. 먹을거리와 생필품은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에서 해결한다. 퇴직 전에는 대형마트에서 쓰는 비용만 월 80만∼90만 원 됐지만 재래시장을 이용하면서 이 돈을 70만 원대 초반까지 줄일 수 있었다. 주 반찬은 1000원짜리 2봉지면 세 끼 반찬을 해결할 수 있는 나물이다. 단백질은 고기보다는 주로 제철 생선을 통해 섭취한다. 고기가 당기면 돼지 목살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다. 외식은 1년 중 아내 생일이나 명절을 빼면 거의 하지 않는다.

개인 용돈도 대폭 줄였다. 종종 이용하던 택시를 끊은 지는 오래다. 피우던 담배도 3000원대에서 2500원짜리 ‘더 원’으로 바꿨다. 친목 모임도 초등학교 동창회, 퇴직자 모임 등 2개로 줄였다.

퇴직 뒤 2년간 몸치장에 돈을 쓴 건 딱 두 번뿐이다. 조카 결혼식에 가려고 서울 동대문 양복점에서 8만 원짜리 검은 양복을 맞췄다. 산책 나갈 때 입을 3만 원짜리 아웃도어 의류도 장만했다.

여가시간에는 신당동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남산을 주로 찾는다. 북한산 등 근교 산을 가면 차비가 들기 때문이다. 점심은 산책로 근방 5000원짜리 산채비빔밥으로 때운다. 1000원 하는 식당 커피 값을 아끼려고 3km 정도 떨어진 자판기까지 가서 300원짜리 커피를 빼먹는다. 오후엔 가까운 한옥마을에서 각종 문화공연도 즐긴다. 윤 씨는 “남산은 내게 돈 안 드는 최고의 놀이터”라고 말했다.

윤 씨는 최근 걱정이 하나 생겼다. 아내가 대형마트에서 두 달가량 쉬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현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은 통장에 든 200만 원이 전부. 국민연금액만으로 두 달을 버텨야 한다.

윤 씨는 요즘 들어 세무직 공무원으로 퇴직한 동창생이 부럽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현직 때는 자신만만했지만 3배가량 많은 연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든다.

<특별취재팀>

▽팀장 하종대 부국장
▽이진 국제부장, 이성호(사회부) 유근형(정책사회부) 이원주(경제부) 김경제 변영욱 기자(사진부)
▽국제부
박형준 전승훈 신석호 특파원
▽편집국
김아연 매니저

▽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 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
석재은 한림대 교수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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