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
독자들 중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 워런 버핏,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 전설적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등 돈의 세계를 주름잡은 사람들이 모두 남자였다면서 필자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금융에서 평균적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표를 받아온 성별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첫째는 ‘호르몬’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남편들이 경쟁적인 성향을 갖도록 한다.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재테크를 하려면 ‘매달 100만 원씩 금융상품에 넣어서 1년에 70만 원 정도 수익을 내겠다’는 자신만의 절대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편들은 단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돈을 굴린다. ‘이웃집이 주식투자로 100만 원을 벌었다는데 나는 150만 원을 벌어야지’ 한다든가, ‘코스피가 5% 올랐으니 나는 10% 수익을 내야지’ 하는 마음가짐 때문에 무리수를 둔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 여자들은 천성적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한다. 이런 성향은 손실이 났을 때에도 드러난다. 남자들은 화를 내는 반면 여자들은 두려워한다. 화가 난 남편은 손실을 만회하려 더 많은 돈을 끌어들여 재투자한다. 이른바 ‘물타기’이다. 짚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다. 두려움이 커진 아내는 손실이 난 시장에서 일단 발을 뺀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서 더 큰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또 여자들은 ‘숙제’를 잘한다. 여기서 숙제란 본격적으로 금융상품이나 부동산을 사기 전에 해야 할 준비 과정이다. 펀드나 정기예금에 들 때 아내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한 다음 여러 금융회사를 찾아다니며 비교해 보려 한다. 집을 살 때도 여러 지역 중개업소를 돌아다니고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도 서두르지 않는다. 대중교통, 편의시설, 자녀 학교, 심지어 아래층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도 알아보려 한다. 남편들이 소심하다고 여기거나 귀찮아서 하지 않는 조사를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한다.
동네 아줌마 모임의 수다 속에서 집단 지성이 형성된다. 이른바 ‘조언 흡수력’은 뛰어나지만 리스크에 민감하기 때문에 스스로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지갑을 절대 열지 않는다. 귀동냥으로 들은 불확실한 정보에 휘둘리는 남편과 다른 대목이다.
여자들의 이런 모습은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과도 맞아떨어진다. 버핏은 ‘미스터 마켓’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두고 투자의 동반자로 삼았다. 이 미스터 마켓은 우리에게 항상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갖가지 질문에 답해준다. 이런 수고를 한 뒤에 우리가 그의 제안을 거절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만큼 편한 친구다. 버핏은 재테크는 이 친구를 십분 활용해서 독자적으로 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남편들은 어떤가? 자신감이 지나치다. 친구를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시장에 대해 필요한 질문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친구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배려하느라(시장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하느라) 많은 품을 들이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아내에게 돈을 맡기면 설령 돈을 잃어도 가정이 깨지지 않는다. 아내가 선택하고 대금을 지불한 집 가격이 나중에 하락했다고 해보자. 평소 부동산 시장과 교감이 없는 남편은 집값 하락 사실을 눈치 채는 데 상당 기간이 걸릴 것이며 책임 소재를 따질 만한 과거 데이터도 없다. 다툼 자체가 안 된다. 남편이 혼자 선택한 집값이 떨어졌다면? 남편으로선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히 고민했을 아내의 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