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오리농가 ‘AI 공포’ 확산
32개월 만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다시 발생한 가운데 1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의 닭·오리고기 판매 코너가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전북 119소방대원들이 차량 소독약 자동살포기를 설치하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농장 입구에는 검역복을 입은 공무원 2명이 차량 진입을 모두 막았다. 이 농장에서 키우던 오리는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린 것으로 판정됐다. 전북 고창에 이어 두 번째다. 이 농장의 오리 2만여 마리는 18일 오후까지 모두 도살 처분됐다. 농장 주변 도로 곳곳에는 하얀 소독약품이 뿌려져 있고, 농장 입구에는 ‘방역상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나붙었다. 인근의 축산 농민들은 “설 대목을 앞두고 자식같이 기른 오리를 모두 땅에 묻게 생겼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 번째 AI가 발생한 줄포면의 B오리농장에서 300m 떨어진 인근 50대 농장주 부부는 “18일 밤 키우던 육용오리 1만5000마리 중 300여 마리가 갑자기 폐사했다”며 “설 대목은커녕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줄포면에서 닭 2만여 마리를 키우는 강모 씨(61)는 “걱정이 돼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설 이전에 AI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는 거점소독장소와 이동통제초소를 170여 곳으로 확대하고 도내 축산등록차량 4502대에도 무선인식장치를 통해 이동제한명령을 내렸다. 전북지방경찰청과 전북 향토사단(35사단)도 통제초소 등에 병력 300여 명을 투입했다. 전북도는 현재까지 약 15만 마리의 오리와 닭을 도살 처분했다.
○ 동림저수지 가창오리가 주범?
고창과 부안의 AI 발생 농가는 모두 철새인 가창오리 떼가 있는 동림저수지에서 남북으로 직선 5km 거리 안에 있다. 동림저수지로 가는 모든 진출입 도로는 18일 오후부터 통제되고 있다. 저수지 인근에는 국도 23호선이 통과한다. 동림저수지에는 지난해 말부터 20만∼30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날아왔다. 석양 무렵 환상적인 가창오리의 군무를 찍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오던 사진작가 300여 명도 출입 통제로 모두 철수했다. 검역본부 직원들은 17, 18일 이곳에서 폐사한 가창오리를 수거해 AI 때문에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 인근 충남 전남도 비상 상황
전국의 자치단체들도 AI 확산 조짐에 따라 비상이 걸렸다. 특히 전북과 인접한 충남과 전남은 차단 방역에 총력을 쏟고 있다. 충남도는 전북과 통하는 주요 도로 14곳에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철새도래지 등에 대한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3년 전 AI의 직격탄을 맞은 전남 나주도 휴일을 잊은 채 방역 활동에 분주했다. 경남도도 24시간 방역대책본부를 가동하고 예비비 6억 원을 투입해 소독약품을 구매하고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최초 AI가 발생한 고창 신림 농장에서 30km 떨어진 전남 영광군 영광읍 국도 23호선에 설치된 방역초소에서는 영광군 공무원 4명이 닭, 오리 등 가금류 사육농가 등의 차량 이동을 제한했다.
AI 여파로 재래시장 닭집 등도 직격탄을 맞았다. 영광군 재래시장의 닭집 주인 김옥순 씨(73)는 텅 빈 닭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는 “18일부터 AI 때문에 닭, 오리를 사오지 못했다”며 “하루에 평균 닭, 오리 10여 마리를 팔았지만 AI 발생 이후 1, 2마리만 판매할 정도로 손님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 가창오리 ::
고창=김광오 kokim@donga.com
부안=이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