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스웨터를 뜨는 시간
―조혜경(1967∼)
저 별은 고양이
돋아난 털, 반짝 세우고 눈을 빛내지
조종사가 사라진 하늘에 별이 돋는다
비행기가 사라지며 비행기자리가 되고, 잃어버린 장갑 한 짝이 장갑자리가 되어 뜨는
하늘이 점점 복잡해진다
손가락을 미끄러지는 털실
하늘만큼 복잡해지는 방안에서
여자는 뜨개질을 한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선물하는 죽은 자의 시간,
죽은 양의 털을 손가락에 걸고 두 개의 바늘을 엇갈려서
꼬이고 엉키다 길어지는 털실 옷
살진 두더지의 발톱에 묻은 까만 흙처럼
네가 그토록 싫어하던 어둠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익숙한 냄새
사라진 자들이 써놓은 책을 얼굴 위에 덮고
너는 울고 있다 두더지의 밤, 두더지의 구석
두더지의 털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
요즘 자꾸 살이 쪄,
귀에도 살이 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잠든 네 몸통의 크기와 팔의 길이를 짐작해보며 이 밤
스웨터의 팔이 길어지고 있다
스웨터의 빈 단추자리를 노려보는
저 별은 너의 고양이별은 사라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의 표상(表象)이기도 한데 조혜경 시인은 지나간 비행기에도, 잃어버린 장갑 한 짝에도 별자리를 부여한다. 자기의 짙은 상실감을 장난스러운 상상력으로 묽히려는 의도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거리가 먼 사물에까지 상실의 고통을 느끼는, 과민한 마음 상태가 엿보인다. 시에서 뜨고 있는 스웨터는 실제 검은색이겠지만 뜨개질하는 여자의 어둡도록 혼돈스러운 마음의 빛깔이기도 할 테다. ‘하늘이 점점 복잡해진다.’ 하늘은 이 여자의 머릿속이겠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선물하는 죽은 자의 시간’은 두 겹 의미의 앙상블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입히려고 ‘죽은 자’처럼 생기 잃은 여자가 ‘죽은 양의 털’로 스웨터를 짜고 있다는. ‘검은 스웨터를 짜는 시간’이 꼬이고 엉키고 길어지면서 여자는 두더지로 변해간다. 마치 그 검은색 스웨터가 두더지의 외피인 듯이. 사는 게 이게 뭐야? 두더지 같아! ‘그토록 싫어하던 어둠/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익숙한 냄새!’ 이것이 시 속 여자가 느끼는 자기 삶의 현장이다. 점점 자기 존재가 사라지고 두더지가 돼간다고 느끼는 여자가 울면서 뜨개질을 한다. 두더지는 팔(앞다리)이 짧다. 그런데 스웨터의 팔이 점점 길어지누나. 자신이 두더지 같다고 여기는 사람의 별, 이상(理想)은 고양이일 테다. 그 별이 노려본다. 내용과 형식을 절묘하게 뜨개질한 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