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KOTRA무역관장 피랍]
한국인 노린 ‘표적 납치’

하지만 순환도로에서 벗어난 직후인 5시 30분 정체불명의 차가 한 관장의 차를 가로막았다. 이들은 무역관이 있는 트리폴리타워에서부터 미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괴한 4명이 총을 들고 달려 나와 운전사를 위협한 뒤 한 관장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를 태운 채 트리폴리 서쪽으로 사라졌다. 차와 함께 남겨진 운전사는 곧바로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에 납치사건을 신고했다. 이때가 5시 40분. 정부 당국자는 20일 “제반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인’을 겨냥한 사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한국인 노린 납치로 보이나 이유는 안갯속
괴한들이 트리폴리 서쪽으로 달아난 점도 단서가 될 수 있다. 최근 이 지역에서 알카에다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폴리에서 튀니지에 이르는 리비아 서부 5개 부족장인 마흐무드 샤리프는 이날 WND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나토의 공습으로 리비아 정국이 불안정해지면서 알카에다와 이슬람 급진세력이 발호하고 있다”며 “지금 이곳엔 정부도, 법도, 질서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맡은 트리폴리 서부의 사브라타 지역에도 알카에다 훈련캠프가 있으며 인접한 알제리나 말리에서 스피드보트로 기관총 등 다양한 무기가 반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최근 리비아에서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잇따랐다. 2일 사브라타의 서쪽 멜리타에서 영국인과 뉴질랜드인 2명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고 17일에는 동부 데르나 지역에서 도로 보수공사를 하던 이탈리아인 2명이 납치되기도 했다.
○ 트리폴리 무역관 지난달에도 점거된 적 있어
KOTRA 트리폴리 무역관은 지난해 12월 1일 시위대와 충돌을 빚은 리비아 민병대에 점거돼 4일간 폐쇄되기도 했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리비아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며 대사관 직원들이 모두 한 숙소에서 지낼 만큼 상시 비상근무 태세”라고 말했다. 무역관의 현지 직원인 나디야 아라마단 씨(여)도 “현재 트리폴리의 치안 사정은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얼마든지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비아에 진출한 20개 국내 건설사는 피랍 소식에 현지 직원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사 건수는 47건으로, 총 100억 달러(약 10조6000억 원) 규모이며 진행 중인 공사현장은 13곳으로 집계됐다.
조숭호 shcho@donga.com·정성택 기자
파리=전승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