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전후 세시풍습과 설 음식들

겨울 명절의 꽃은 설날이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보름간은 한 해를 시작하는 경건한 날이자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즐기는 한바탕 축제였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로 ‘새로움’ ‘새 출발’의 의미가 강하지만 섣달그믐날 밤을 지새우고 맞으니 오히려 시간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날 풍속은 섣달그믐의 풍속과 맞닿아 있다. 옛 사람들은 그믐날 집 안팎을 대청소하고 집안 구석구석 불을 밝히는 한편 한밤중에 대나무에 불을 지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런 풍습은 새해를 경건하기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남은 음식과 바느질감도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새 출발을 위해 다 비우자는 뜻이다. 그믐날 먹는 비빔밥 역시 남은 음식을 정리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섣달그믐날 밤의 ‘묵은세배’

설날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음식들. 왼쪽 위부터 우족을 고아 만든 족편, 설날의 대표 음식 떡만둣국,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흰색의 떡국 떡, 그리고 명절에 빠지면 허전한 각종 전. 동아일보 DB
그믐날에는 스승이나 처가에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특별히 토산품을 보낸다. 오늘날 연말연시 선물 보내는 관습은 이런 전통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설날에는 특별히 덕담이 오간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덕담은 때로 ‘스트레스’가 되고 있지만 예전 사람에게 새해 덕담은 단순한 인사말 이상의 강력한 힘을 지닌 언어였다. 서울지방에서는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처럼 모든 덕담을 과거형으로 했다. 기정사실화한 과거형이야말로 가장 강한 주술력을 발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새로운 시작, 흰색 떡국… 영양 만점, 신선로 족편 ▼
신성한 떡을 일상의 국으로 만든 기발한 발상
떡국도 지역별로 개성이 넘친다. 위쪽부터 미역생떡국(충북), 두부떡국(전북), 굴떡국(경남), 조랭이떡국(개성) 동아일보 DB
떡국은 양념이 강하지 않은 장김치와 먹어야 맛이 죽지 않는다. 또 다른 설날 특식은 신선로나 녹두전으로, 모두 겨울 음식이다. 고기 요리로는 갈비찜과 족편이 있다. 족편은 소의 발 부분을 고아 젤라틴을 얻은 다음 생강 후추 잣 파 깨 등을 넣고 다시 고은 후 응고시켜 흰색과 황색의 달걀지단, 검은 석이버섯채, 빨간 실고추, 푸른 파 등 오방색으로 장식한 멋진 음식이다. 동물 발에서 나온 음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품위가 있다.
음료로는 설날과 대보름 기간 약재를 넣어 만든 약주를 차게 마셨는데, 액을 막고 귀를 밝힌다고 믿었다. 식혜와 수정과는 지금도 해먹는 음료로 특히 수정과는 겨울에 맛나다. 과자류로는 유과, 약과 그리고 특별히 도라지나 연근, 동아(모양이 무와 비슷한, 박과 식물의 열매) 등을 꿀에 조려 만든 정과와 오미자나 과일로 만든 편(젤리류)도 먹었다. 그러나 곡식으로 만든 강정이 겨울 과자의 꽃이었다. 이렇듯 풍성한 설날 명절은 대보름까지 보름 동안 일진에 따라 날마다 금기와 놀이를 달리하며 전통 명절 가운데 가장 길고 화려한 축제 기간을 이어간다.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