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태풍의 역설… 풍년이 가져온 두가지 풍경

당근 20kg(상등급 제품·서울 가락동시장 경매가 기준)의 1월 평균 가격은 1만5994원. 1년 전 1월 1∼21일의 평균 가격은 8만9660원이었다. 가격은 무려 82.2% 폭락했다. 농산물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표기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다. 당근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채소 가격이 1년 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배추의 1월 평균 가격(상등급 제품·가락동시장 경매가 기준)은 10kg에 4082원으로 지난해 1월(1∼21일 평균) 9418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무도 마찬가지다. 18kg 경매가격이 4982원으로 지난해 1월 9590원에 비해 48.1% 떨어졌다. 시금치, 대파, 양배추, 적상추 등 식탁에 자주 올라가는 채소들의 가격도 일제히 하락했다.
무태풍의 역설은 과일 시장에도 나타났다. 태풍이 닥치면 열매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지난해에는 태풍 피해가 거의 없었던 탓에 낙과(落果)가 줄었다. 나무 한 그루당 열매가 많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열매가 흡수하는 영양분이 줄어들어 크기가 고만고만해진다. 그 결과 상품성이 좋은 대과(大果)의 수가 감소했다. 즉, 전체적인 과일 생산량은 늘었지만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큰 과일’의 수확량은 줄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과일은 사과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특등급 대과로 이뤄지는 사과 선물세트(11개)의 가격은 8만5000원으로 지난해보다 5000원 올랐다. 이에 비해 일반 사과 가격은 일제히 하락했다. 공급량이 많아진 탓이다.
흥미로운 건 사과와 더불어 대표적 설날 과일인 배는 크기가 크더라도 가격이 내렸다는 점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12년 태풍 피해로 지난해 설날을 앞두고 배 가격이 이례적으로 비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크기가 큰 배의 가격이 상승했지만 지난해 가격에는 못 미친다는 뜻이다. 또 배는 사과만큼 크기 차이가 크지 않아 가격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