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연금 두 개의 노후<下>2009년 공무원연금 개정안의 ‘숨은 문제’ 4가지
교수 집단도 이상할 정도로 공무원연금 문제 앞에서는 몸을 사린다. 공무원연금이 개혁되면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들의 노후 안전판인 사학연금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개혁의 목소리가 끓어오르지만 결국 용두사미 꼴이 돼 버린 배경이다.
가장 최근인 2009년 통과된 공무원연금 개정안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정부는 2009년 개혁으로 ‘부담은 늘고, 퇴직 뒤 받는 금액은 줄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개혁 효과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부의 자화자찬이 민망할 정도다. 일반인이 잘 모르고 있는 공무원연금의 숨은 문제를 짚어본다.
2009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연금 지급 기준을 보수월액(본봉)과 수당을 합친 액수로 정했다는 점이다. 2009년까지는 전체 급여의 65% 수준인 본봉만 기준이었다. 소득대체율을 낮춰 연금액을 깎는 개혁을 한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연금 지급 기준액을 높여 깎이는 금액을 보전하는 꼼수를 쓴 셈이다.
예를 들어 월평균 300만 원을 받는 공무원이 있다고 하자. 2009년 개정 전이라면 수당 약 105만 원을 제외한 195만 원의 76.0%인 약 148만 원이 연금액이다. 2010년부터 소득대체율이 62.7%로 줄어들었지만 연금 지급 기준은 본봉인 195만 원이 아니라 300만 원이 돼 연금액은 188만 원으로 늘어난다.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 산출한 사례지만 오히려 연금액이 더 늘어날 개연성이 생기는 것이다. 연금 지급 기준 문제는 2009년 당시 크게 공론화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로 작게 적어 놔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개정 이후 연금액이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은 “2009년 상당한 수준의 개혁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재직자, 그중에서도 장기 재직자를 대상으로는 개혁 강도가 매우 낮았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은 적립기금을 쌓아두는 국민연금과는 달리 바로 걷어서 바로 주는 부과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공무원연금의 적립기금 규모,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적 검토가 적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일반인이 공무원연금은 적립기금이 없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2012년 현재 6조3576억 원이란 적지 않은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금은 불가피한 이유로 제도가 종료됐을 때를 대비한 책임준비금이다.
연금 전문가들은 연 2조 원 가까운 세금이 공무원연금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투입되고 있고 총 지급보장 부채가 10조 원에 이르는데도 6조 원이 넘는 기금을 쌓아두고만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적립기금을 사용해 국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구나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법상으로 국가의 지급 보장이 명문화돼 있다. 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지나치다는 얘기다.
③‘33년 치’ 내고 ‘40년 치’ 받는다
예를 들어 40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면 보험료는 33년 치만 내면서 40년 재직을 기준으로 계산한 연금을 받는다. 이 문제는 2009년 개혁 논의 과정에서 소장 연금학자들이 손질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④공직 단기근무 추세 외면했다
공무원연금 최소 가입 기간을 20년으로 유지한 점도 또 다른 문제로 꼽힌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2006년 발족한 1차 공무원연금발전위원회(공발위)는 최소 가입 기간을 국민연금과 같은 10년으로 낮추는 안을 채택했다.
기존 공무원들의 기득권을 줄이고 장기 근무자가 줄어들고 있는 공직사회의 흐름을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공무원단체들은 최소 가입 기간을 줄이면 연금 지급이 늘어나 재정이 악화된다며 반대했고 결국 2차 공발위 논의 과정에서 10년 조항이 빠졌다.
▼ 2007년 1차 개혁안선 수령액 대폭 삭감 ▼
공무원 반발로 좌초… 최종안은 개혁 실종
용두사미 그친 공무원연금 개혁
역대 공무원연금 개혁은 대부분 군불만 때다 마는 식이었다. 노무현 정부 중후반부인 2006년부터 2009년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 이어진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할 공무원연금발전위원회(공발위)가 발족했다. 연금 전문가가 다수 포진된 산하 제도전문위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공발위는 30차례 이상 공식, 비공식 회의를 통해 ‘연금 수령액을 대폭 삭감한’ 1차 개혁안을 마련해 2007년 1월 제출했다.
통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정부는 공발위 안을 토대로 입법 과정을 밟아야 했다. 하지만 1차 공발위 개혁안은 폐기됐다. 당시 정부는 여론이 엇갈려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공무원사회의 극심한 반발 때문에 공발위 안이 좌초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1차 공발위에 참여했던 A 씨는 “공발위 안이 정당한 사유 없이 폐기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당시 1차 공발위 실무를 맡았던 행정자치부 담당자가 지방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강력한 개혁안이 나온 것에 대한 보복성 인사였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정부는 2007년 2차 공발위를 발족시켰다. 이번에는 개혁에 적극적인 전문가 상당수가 빠지고 공무원노조, 퇴직자, 정부관계자, 국책연구원 등 공무원 사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위원들이 대거 들어섰다. 회의 과정은 극도의 보안이 유지됐다. 회의 자료에는 위원 이름이 적혀 있었고 끝나면 즉시 걷어갔다. 회의록이나 녹취록도 없었다.
2차 공발위에 참여했던 B 씨는 “친정부 인사가 50% 이상이었다. 주요 문제들은 다수결로 밀어붙였다. 결국 행자부 논리대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여론 수렴 장치인 공발위가 행자부의 거수기 노릇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완화된 2차 공발위 최종안이 윤곽을 드러내자 일부 위원들은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금액을 깎는 내용’이 포함된 1차 공발위 개혁안을 2차 공발위 최종 보고서에 첨부해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용두사미에 그칠지라도 논의 과정만은 있는 그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고 2008년 2차 공발위 개혁안에 기초한 정부안이 발표됐다. 2008년 12월 정부안을 놓고 국회 공청회가 열렸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논란이 잠잠해진 2009년 12월 말 공무원연금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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