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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시인 “단절된 역사의 무대 북방은 내 영감의 원천”

입력 | 2014-01-22 03:00:00

시집 ‘슬픔의 뼈대’ 곽효환 시인




세 번째 시집 ‘슬픔의 뼈대’를 낸 곽효환 시인. 그의 시가 쉼 없이 노래하는 북방은 환대와 조화가 있는 정감의 고향인 동시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그리움의 원형을 품은 공간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곽효환 시인(47)이 4년 만에 낸 세 번째 시집 ‘슬픔의 뼈대’에 수록된 시들에서는 저 멀리 시베리아 평원의 풀내와 고비 사막의 먼지 냄새, 바이칼 호숫가에 피운 모닥불의 재 냄새가 난다. 흙먼지 일렁이는 북방의 내음이다.

“아세요? 북방 유목인들은 모닥불을 쬘 때 남녀와 노소에 구분을 두지 않고 이방인들도 똑같이 불을 쬐게 했대요.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았던 거죠. 제게 북방은 그런 공간입니다.”

시집 속 북방은 문명으로 인한 왜소화, 파편화를 겪기 이전의 원형을 간직한 곳이자 환대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장작더미에 피워 올린 모닥불을 에워싼/나와 나를 닮은 사람들, 푸른 눈망울의 사람들/삼백서른여섯 개의 물줄기를 받아들여/단 하나의 물길로 흘려보내는/이들의 몸에는 하나같이 은빛 물살무니 피가 흐른다”(‘바이칼 사람들’ 중)

전북 전주가 고향인 ‘남녘 사람’인 시인이 어쩌다 북방을 동경하게 됐을까? “박사 논문 주제가 북방 시인 김동환, 백석, 이용악 3명의 시에 나타난 북방공간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었어요. 강한 서사성과 커다란 시적 울림이 이들 시의 특징인데, 분단 이후 남녘에선 찾아보기 힘들어진 감성이지요.”

시인에게 시의 젖줄이자 영감의 원천인 북방은 단절된 우리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기에 시인이 느끼는 애잔함은 크다. “하늘 아래 가장 광활한 평원 시베리아/녹슨 철로에 몸을 실은 사람들/그 붉은 이름들이 흘러간다/징용이었을까 독립이었을까 혹은 혁명이었을까”(‘시베리아 횡단열차2’ 중)

북방이 조화로운 삶의 원형을 간직한 공간이기 때문일까. 시인의 눈에 비친 지금 여기는 이를 상실한 불화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아랫자리들의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던” 피맛길을 해체해 버린 청진동 재개발에서는 자본의 무자비함에 놀라고(‘피맛길을 보내다’ 중), “40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면서도 170억원을 배당한 마법을” 부린 한진중공업의 ‘기적’ 앞에서는 울렁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탄식한다(‘희망버스’ 중). 25년 넘게 광화문(대산문화재단)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시인의 통찰이 번뜩이는 대목이다.

스스로를 “남들보다 빨리 움츠러들고, 남들보다 소심하게 반응하지만 대신 먼저 아프고 오래 앓고 마지막까지 질문”하는 ‘소심한 겁쟁이’로 칭하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 남긴 시인의 말을 이렇게 끝맺는다. “이 멀고 긴 여정 속에서 내내 담담하고자 했으나 그늘 깊은 곳에서는 더러 울기도 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