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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매형-원자바오 아들 포함”… 부패척결 대형 암초

입력 | 2014-01-23 03:00:00

ICIJ “中 최고위층 4조달러 역외탈세 의혹” 폭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친인척들이 대거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웠다는 단서가 나오면서 중국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친인척들은 과거에도 꾸준히 비리 의혹이 제기됐던 인물들이다. 반(反)부패를 앞세워 권력 장악과 함께 ‘1인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 시 주석의 정치 행보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민낯 드러낸 ‘태자당’

22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중국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보고서는 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 설립을 대행해주는 ‘포트컬리스 트러스트넷’과 ‘커먼웰스트러스트’라는 회사에서 확보한 기밀 파일을 분석한 결과다. 유령회사 설립을 통해 역외탈세를 시도한 중국 정·재계 유력 인사들은 이번에 조사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ICIJ는 ‘홍색(紅色)귀족’ 13명의 유령회사 설립 이력을 제시했다. 홍색귀족은 혁명 원로 등 전·현직 지도부의 자제를 가리키는 말로 태자당(太子黨)과 같은 뜻이다. 시 주석도 태자당이다.

이번 조사에서 시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 최소 5명의 전·현직 공산당 상무위원의 친인척이 해외에 유령회사를 세운 정황이 포착됐다. 시 주석의 매형 덩자구이(鄧家貴)는 2008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엑설런스 에포트 프로퍼티’라는 회사를 세워 지분 50%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개발업자로 3억 달러(약 320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희토류 개발업체 지분을 소유한 덩자구이는 시 주석의 큰누나 치차오차오(齊橋橋·모친을 따라 성을 바꿈)의 남편이다. 앞서 2012년 7월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당시 부주석이던 시 주석의 일가 자산이 3억7600만 달러에 이른다며 그 대부분을 덩자구이 부부가 갖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원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과 사위 류춘항(劉春航)도 BVI에 유령회사를 세웠다. 아시아 최대 위성통신사로 꼽히는 중국위성통신그룹 회장인 원윈쑹은 부친이 총리로 재직(2003∼2013년)하던 2006년 ‘트렌드 골드 컨설턴트’를 세웠다. 그는 과거에도 각종 사모펀드를 만들어 이권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샀다. 류춘항은 2004년 ‘풀마크 컨설턴트’라는 회사를 차렸다. 홍콩 밍(明)보는 류춘항이 세운 회사가 2006∼2008년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에서 자문료로 180만 달러를 받았으며 당시 원 전 총리의 딸 원루춘(溫如春·류춘항의 부인)이 회사를 대표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류춘항은 중국 은행감독위원회 연구국 책임자로 있다.

원 전 총리는 2012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부인 등 일가의 재산이 27억 달러(약 2조8800억 원)에 이른다고 보도해 곤욕을 치렀다. 재임 때 ‘서민 총리’ 이미지로 유명했던 원 전 총리는 18일 언론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명예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위 우젠창(吳建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사촌형제의 아들 후이스(胡翼時),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李小琳) 등도 BVI에 회사를 차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전·현직 상무위원 외에 중국 8대 혁명원로인 펑전(彭眞·본명은 푸마오궁·傅懋恭)의 아들 푸량(傅亮), 예젠잉(葉劍英) 전 국가부주석의 조카 예쉬안지(葉選基) 등도 회사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밖에 주요 포털 사이트인 텅쉰(騰迅)을 창립한 마화텅(馬化騰), 중국 여성 최고 부자 양후이옌(楊惠姸) 등 재계의 ‘슈퍼 리치(super rich)’ 16명도 유령회사를 세웠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또 UBS 크레디트스위스 KPMG 등 외국 대형 은행과 회계법인은 회사 설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 역외탈세 후폭풍 맞을 지도부

ICIJ가 시 주석 일가까지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워 탈세를 도모한 정황이 있다고 밝힘에 따라 반부패 사정(司正)을 통해 권력 기반을 다지던 중국 지도부가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ICIJ는 “중국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섞인 나라로 변하면서 ‘조세피난처’로 돈을 빼내는 선두주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포트컬리스 트러스트넷은 중화권 고객을 위해 조세피난처에 세운 법인 수가 2003년 1500개에서 2007년 4800개로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유령회사를 소유한 중국(홍콩 포함) 국적자는 2만1321명으로 미국(3713명)의 5.74배에 이른다.

ICIJ는 조세피난처 내 회사 설립과 탈세 및 자금 유출 간 관계를 증명할 구체적인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많은 중국 기업이 해외기업을 통해 불법행위에 가담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세금을 피하려 유령회사로 싸게 상품을 넘긴 뒤 이 회사를 통해 해당 상품을 정상 가격에 재판매함으로써 돈을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중국에 체류 중인 미국 변호사 스티브 디킨슨 씨는 ICIJ에 “중국에서는 가족들에게 수십억 위안(10억 위안은 1763억 원) 정도를 못 줄 거면 공산당 최고 지도부를 왜 맡겠느냐는 정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들(ICIJ)의 논리가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그 배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맑은 것은 스스로 맑고 탁한 것은 스스로 탁하다”며 대응을 삼가며 거리를 둘 것임을 내비쳤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는 관련 보도 검색이 차단됐다. ICIJ는 23일 추가 폭로를 계획하고 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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