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이대로는 안된다/2부 개혁 가로막는 ‘3대 암’]<2>낙하산 권력, 실종된 책임경영
당초 석유공사는 경영난을 겪던 하비스트의 정유 자회사를 빼고 원유 생산광구만을 인수하기로 해 그해 10월 14일 이미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하비스트 측이 “자회사를 함께 사지 않으면 광구를 팔지 않겠다”고 버티자 석유공사는 21일 이사회에 승인도 받지 않고 자회사까지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외 자산을 인수할 때 먼저 이사회의 의결을 받도록 한 규정을 어긴 것이다.
회사 측이 계약을 체결한 뒤에 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렸는데도 이날 이사회는 별다른 지적 없이 안건을 일사천리로 승인했다. 현재 석유공사는 하비스트의 정유 자회사 인수로 매년 1000억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2009년 102%에 불과하던 부채비율은 이듬해인 2010년 156%, 2012년 168%로 치솟았다.
○ 부실경영해도 책임 안져
역대 정부들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강화 등 공기업들의 경영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들을 내놨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성과급 잔치’ 같은 공기업 방만 경영은 계속되고 있다. 적자 경영으로 부채가 늘어나는데도 방만 경영 관행이 끊이지 않는 것은 공기업의 성격상 경영 부실의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낙하산 인사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과다 부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감사원이 12개 부채 중점관리 대상 공기업 중 토지주택공사(LH) 등 9개 공공기관의 2007∼2011년 부채 증가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정부의 정책사업을 추진하다 생긴 부채가 42조9000억 원으로 전체 부채 증가액(115조2000억 원)의 37.2%를 차지했다. 수자원공사의 경우 전체 부채 증가액의 82.5%, 토지주택공사(LH)는 59.9%가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빚이다. 보금자리주택,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주도한 이 공기업들의 기관장은 모두 취임 때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은 인물들이었다.
○ “이사회 독립성 높여야”
경영진의 전횡을 막아야 할 감사나 이사회 역시 외풍(外風)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현재 공공기관들은 임원 선출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통해 이사회 구성원을 추천하고 있다. 문제는 임추위원에 선임되는 외부인사 대부분이 정권이나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있는 기존 사외이사들로 채워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임추위가 추천한 후보에 대한 최종 임명 권한 역시 기획재정부 등 주무 부처 장관들이 쥐고 있어 주무 부처나 기관장이 임추위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미리 점찍어둔 인사가 탈락하면 임추위 선정 결과를 백지화하고 재공모에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임원 선출에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결국 공공기관 운영이나 직원보수 등 중요한 경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허경선 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기업 임원 선정과정을 공개하고, 재공모를 제한하는 등 임추위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낙하산’을 근절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