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30세 여배우… 알바 안하면 월세도 못내 4대 보험 보장? 계약직인 우리에겐 ‘꿈’ 대기업 제작사들 임금 체불 횡포 너무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열악한 형편
20년 정도 촬영 팀에서 일했다. 이제 좀 경력이 쌓여서 한 작품 하면 1500만 원 정도 받는다. 문제는 1500만 원이 연봉이라는 거다.(43·스태프)
4, 5번 정도 영화가 중간에 중단돼서 인건비를 못 받았다. 결국 1년 반 넘게 무일푼 백수로 지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집세라도 내려고 편의점, 야채가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는 돈으로는 보리차도 살 수 없어 수돗물만 끓여 먹고, 컵라면 사 먹으려고 빈 병 주우러 다녔다. 배고픔에 치를 떨었다.(37·스태프)
가난이 내 작업을 사로잡을까봐 두렵다. 가장 힘들었던 해는 한 해 수입이 200만 원이 안 된 것 같다. ‘알바’도 못하고 작업을 마무리하고 보니 수중에 4000원밖에 없었다. 3주간 4000원으로 버텼다. 한번은 친구가 교통카드 충전을 해줘서 밖에 나갈 수 있었다. 구질구질했다.(33·여·독립영화감독)
촬영장 막내라는 게 하는 일은 짐꾼이다. 막내로 들어간 날, 일을 주선해 준 형이 13만 원짜리 유명 메이커 운동화를 선물해줬다. 일 열심히 하라고 주는 건 줄 알았는데 한 달 반 정도 촬영하고 영화가 끝났는데 형이 인건비를 안 주는 거다. 알고 보니 그때 그 운동화가 내 인건비였다.(35·스태프)
무명 배우는 촬영 경험을 쌓기 위해 저임금, 혹은 무보수로 촬영한다. 고정 수입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촬영이나 공연 스케줄에 지장이 없으려면 이른 아침, 늦은 밤에 하는 단기 ‘알바’를 구한다. 나도 월세 자금이 불안해서 주말마다 초등학교 댄스강사로 출강한다. 나머지 생활비는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 헤어모델, 홈쇼핑 시연 촬영 등을 하며 충당하고 있다.(30·여·배우)
조연이나 단역 배우는 많이 뽑지도 않을뿐더러 지원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임금은 낮은 편이다. 대체로 촬영 후 두 달 내에 입금이 되는데 작품마다 다르지만 보통 회당 50만∼70만 원 사이다. 그리고 번 돈의 20%를 에이전시에 떼어 준다. 나는 한 달에 120만 원쯤 버는 셈인데 ‘노가다’로 생활비를 채운다.(33·배우)
열정을 착취당하고 있다
막내들은 거의 거지나 다를 바가 없다. 그냥 영화일이 좋다고 해서 온 아이들이니 싼값에 부려먹는 거다. 왜냐고? 걔들은 어려서 열정이 있잖아. 딱 착취하기 좋은 열정이.(42·스태프)
4대 보험 보장? 전혀 없다. 우린 대부분 작품별로 임시 계약직으로 움직인다. 돈도 시간별이 아닌, 계약금 중도금 잔금처럼 받기 때문에 보험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또 제작사들이 스태프의 보험과 관련해서 서류 작업 하는 게 번거롭다 보니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37·스태프)
영화 바닥은 좁다. 부당근로 사례를 제보하면 “너 이 새끼 신고했어? 영화 못 찍을 줄 알아” 하면서 사용자가 스태프 신상정보를 쫙 뿌린다. 다른 사용자는 그 사람 고용을 꺼리게 되고, 피해자는 결국 영화일을 못하게 된다. 제보하는 사람은 앞으로 영화일 안 한다고 작심하는 사람들뿐이다.(36·영화인 신문고 관계자)
단역 배우인가 싶은데, 알고 보면 영화감독인 사람들이 종종 있다. 벌이를 못해 조연 ‘알바’를 하는 거다. 몇십 년 동안 조감독에 머무르다가 40세가 넘어 ‘입봉’(처음으로 영상물을 만드는 것)을 꿈꾸는 감독이 있다. 그런데 기획 단계에서 투자를 못 받아서 영화를 못 만든다. 영화도 못 만들고 돈도 못 벌어서 단역 배우로 뛰는, 그런 조감독들이 많다.(46·스태프)
저예산 단편영화를 찍을 땐 아주 가난하게 찍는다. 미술팀도 따로 없었던 적이 있는데 소품으로 ‘피’가 필요해서 직접 만들었다. 포털사이트에서 ‘피 만드는 법’을 검색해서 물, 식용색소, 물엿, 커피를 끓여서 만들었다.(28·여·배우)
영원한 갑(甲) 대기업 제작사
영화판을 돈놀이로 생각하는 CJ, 롯데 등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 영화계 갑으로서 투자비 등 경제적인 부분부터 시나리오 등의 영화 내적인 부분들까지 모두 자기들에게 이익이 크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한다. 전보다 영화판은 커져도 영화인들이 힘든 건, 현재의 영화판 수익 구조가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이 TV에 ‘문화를 만든다’고 광고를 하니 정말 어이가 없다.(38·스태프)
제작사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시나리오를 막 바꾸다가 결국 없었던 일로 하기도 한다. 그럼 시나리오 작가들은 바보가 되는 거다. 영화산업이 발전하려면 기획 단계부터 지원이 필요한데 기획 단계는 지원이 없다.(32·스태프)
최근 영화를 개봉한 한 감독은 데뷔작이 망하는 바람에 10년 넘게 단편영화 몇 개 외에는 영화를 못 찍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영화도 손익분기점이 180만 명이었는데, 개봉 2주간 관객 수가 7만 명에 불과했다. 도무지 배급사들이 투자를 안 해주는 거다.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감독이 많아질수록 예술 산업은 도태될 거다.(45·스태프)
제작사들이 정말 나쁘다. 한 번 체불을 한 뒤 스태프가 별다른 저항이나 요구를 하지 않으면 다음 영화에서 또다시 체불을 한다. 결국 체불이 체불을 낳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태프야 제작사에서 고용을 안 하면 꼼짝없이 실업자가 되니 대놓고 말할 수도 없다.(39·스태프)
대기업 제작사, 배급사들의 경우 갑의 지위로 상대적으로 헐값에 시나리오를 사들여서 내용을 많이 바꿔 버린다. 그리고 그걸로 스태프에겐 최상의 결과물을 요구한다. 뭔가 이상해도 참 많이 이상하다.(35·여·스태프)
불합리한 관행
전체 5000만 원 정도 수익이 들어왔다고 하면, 연출부 감독이 일단 전부 다 먹는다. 그리고 퍼스트 스태프한테 600만 원을 준다. 그럼 퍼스트 스태프가 100만 원을 갖고, 세컨드에게 남은 500만 원을 준다. 세컨드가 그 500만 원을 가지고 나머지 수십 명의 스태프에게 알아서 분배한다. 막내들은 밥이 아니라 술 담배로 살았다. 수익 배분에 문제가 있다.(36·스태프)
100억 원짜리 투자가 필요한 영화라면 처음부터 100억 원이 다 모이는 건 아니다. 30억 원을 당겨오고 기획을 시작한다. 그 다음 A급 배우를 영입해서 소위 ‘배우발’로 투자금을 모은다. 이후 배급사가 붙어서 배급사 투자가 시작되고, 그 이후 소액투자자가 모인다. 문제는 예산이 적은 기획 초기에서도 스태프는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뭐라도 보여줘야 영화가 돌아가니까. 그럼 무급으로 열심히 찍는다. 그런데 갑자기 주연배우가 안 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가 엎어지면 스태프는 실비 청구를 해도 받을 수가 없다.(42·스태프)
대한민국 콘티 업계엔 독식이 많다. A급 작가라고 불리는 10여 명에게 콘티가 쏠린다. 한 작가는 혼자 400편의 콘티를 맡았다. 어마어마한 수다. 혼자 그 많은 걸 할 수는 없고 ‘새끼작가’를 많이 두게 되는데, 새끼작가들에게는 돈이 잘 분배되지 않는다. 한두 달 부려먹고 돈 100만 원 주고 해고하는 거다.(44·여·콘티 작가)
우정출연이라면 공짜인 것 같지만 우리나라는 기본 2000만∼5000만 원 정도가 든다. 우정출연하는 배우는 대개 유명 배우라서 촬영으로 빠지는 시간만큼 보충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42·스태프)
상업영화는 이윤 추구가 목적인데 우리나라는 영화발전기금을 상업영화에도 준다. 2012년 기준 총 제작 영화가 229편(평균 총제작비 20억3000만 원)인데 제작비 10억 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가 109편이었다. 독립영화 제작비는 대부분 4억 원 미만이고, 1000만 원짜리 영화도 있다. 저예산 영화에서 일한 스태프는 결국 임금 체불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거다.(32·스태프)
정리=김상훈 오피니언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