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상봉 무산 되풀이 말길”
황해도가 고향인 김세린 씨(85)는 1·4후퇴 때 북한에 가족을 두고 월남했다. 김 씨는 “‘사흘이면 국군이 다시 북진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63년이 흘렀다”며 “둘째 여동생이 지난 번 상봉 행사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만날 수 있는 것이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손기호 씨(91)는 6·25전쟁 당시 두 딸 중 큰딸만 데리고 간신히 월남했다. 세 살이던 작은 딸은 북의 친척집에 맡겼다. 손 씨는 “북한에 두고 온 딸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정화 씨(88·여)도 “지난 추석을 앞두고 북한에 두고 온 형제들을 만나면 주려고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을 선물로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꼭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촌들이 북한에 남아 있는 함경북도 출신 이모 씨(69)도 “참 반가운 소식, 참 잘된 일”이라면서도 “상황이 바뀌면 북한이 또 말을 바꾸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다.
애타게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다. 폐암 3기인 김동빈 씨(80)는 들뜬 목소리로 “병세가 더 나빠지기 전 북한이 다시 상봉 제의를 해 아주 기쁘다”며 “이번에는 북한에 있는 누나를 꼭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번 상봉 대상자 중 최고령자였던 김성윤 씨(96·여)는 상봉이 무산된 뒤 한때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다. 김 씨의 아들 고정삼 씨(66)는 “이번에는 여동생 2명과 조카들을 꼭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