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경제부 기자
유대인 못지않게 세계 경제계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중국인 화상(華商)들의 성공비결은 ‘느긋함’이다. 화상들은 찾아온 손님에게 좀처럼 얼마에 팔고 싶은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느긋한 태도로 상대를 조급하게 만들면서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상술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인의 상술은 어떨까? ‘한국인의 부자학’(김송본 지음)에 따르면 한국 상인들은 팔리지 않는 물건은 과감한 에누리로 ‘떨이’를 한다. 이런 방식은 자금회전이 빠르고 사업의 성패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속전속결’로 결판이 나다 보니 손해를 버티며 대반전을 이뤄내는 사례는 많지 않다.
하지만 자산 매각을 앞두고 공공기관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기가 시원치 않은 판에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부동산이며 지분 매물을 쏟아내면 과연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해외 광구를 매각해야 하는 한 공기업 관계자는 “국내 공기업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외국 기업들은 가격이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팔려고 해도 사겠다는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급히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대대적인 자산 매각에 나섰다가 큰 손해를 봤던 외환위기 직후의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공기업들은 해외 광구 20여 곳을 싼값에 내다팔았다가 이를 사들인 일본이나 중국 기업들이 몇 년 뒤 자원가격 급등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물론 국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공공기관 부채를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들의 ‘복지부동’을 우려해 경영 정상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자 하는 정부의 태도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