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한국 근-현대 미술교과서’展서 본 일제강점기 미술교육
1920년대에 쓰였던 어린이 미술교과서 ‘보통학교 도화첩’. 일제강점기였음에도 한복을 입은 조선인들의 그림이 실린 데는 독립의식이 고조되던 한국인들을 회유하려는 속내가 감춰져 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한국 근·현대 미술교과서’는 소규모지만 참 흥미로운 전시다. 20세기 초부터 최근까지의 미술 교과서 210여 점을 모았는데, 어느 세대라도 어린 시절 배우던 교과서를 마주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1950년대 교과서는 엮은이 이름에서 시인 이상의 친구였던 서양화가 구본웅(1906∼1953)이나 장면 총리의 동생인 서양화가 장발(1901∼2001) 같은 예술가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1900∼40년대 어린이 교과서들이다. 한국 최초의 국정교과서가 나온 게 1907년.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초창기 미술 교육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살필 수 있다. 근대 미술 교과서를 연구해 온 김향미 숙명여대 교수는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 교육과 식민지 치하라는 시대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료”라고 평가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 야욕이 노골화하면서 어린이 미술교과서에도 전시 체제를 강조하고 친일 의식을 강조하는 그림들이 실렸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이후 줄곧 일본식 교과서가 통용됐으나 1920년대에 등장한 ‘보통학교도화첩(普通學校圖畵帖)’은 기억해 둘 만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의식이 만연하자 총독부는 ‘문화정치’라는 유화 노선을 폈다. 미술 교과서도 이런 영향 아래 한복을 입은 조선인이나 전통 화풍의 그림이 보인다. 김 교수는 “그나마 한국적 색채가 드러난 시기라는 점에서 보통학교도화첩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1930, 40년대 ‘심상소학도화(尋常小學圖畵)’나 ‘초등도화(初等圖畵)’는 교과서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당시 총독부의 교육 취지가 “충량한 황국신민의 연성을 위한 예술 교육”이었다. 첫 장부터 만주국 국기가 나오고, 군인과 전차 같은 전쟁 소재 그림이 많다. 일반 회화도 명치절(메이지유신 기념일)이나 후지 산을 다룬 작품으로 교체됐다. 군수물자나 공산품 위주의 그림이 담긴 남아용과 의복 및 생활용품이 많은 여아용으로 교과서의 ‘남녀 차별’이 강조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정치적 성격과는 별개로, 성인 작품 위주이던 어린이 교과서에 이때부터 같은 또래의 그림들이 게재된 건 인상적이다. 1920년대 말 일본에서 퍼진 ‘자유화 운동’의 영향으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교육을 강조한 흐름이 반영된 것. 야외에서 실물을 보고 그리는 ‘사생화’ 개념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김달진 박물관장은 “일제강점기 모방에 가까운 한계를 지녔던 미술 교육은 광복 뒤 미국 교육 시스템의 영향을 받아 학생의 개성과 정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4월 30일까지. 무료. 02-730-6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