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하얀 털모자에 빨간 목도리를 둘렀다. 무릎을 덮은 담요 아래 맨발엔 딸기 무늬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그제 하늘나라로 간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도 13세 때 일본군에 끌려가기 전에는 이 소녀상처럼 풋풋한 소녀였을 것이다.
황 할머니는 간도에서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 귀국했지만 대인(對人)기피증으로 가족도 친구도 없이 살았다. 교복 입은 남학생을 일본군으로 착각할 정도로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폐품 수집으로 어렵게 살면서 정부가 매달 주는 150만 원 정도의 지원금도 거의 쓰지 않았다. 고인은 그렇게 모은 1억 원을 생전에 장학금으로 내놨다. 임대아파트 임차보증금 등 남은 돈도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써 달라고 기부한 ‘마음의 부자(富者)’였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 두 눈을 감지 못했다. 일본군에 짓밟힌 젊음이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죽음의 순간까지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는 없었다. 황 할머니 같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모미이 가쓰토 일본 NHK 신임 회장은 25일 “전쟁을 했던 어떤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다”고 망언을 했다. 그는 “독일 프랑스엔 없었나. 네덜란드엔 왜 지금도 매춘 거리가 있겠느냐”며 “한국이 일본만 강제 연행한 것처럼 말하니 이야기가 까다로워졌다”고 기자회견에서 떠들었다. 일본 공영방송의 수장(首長)이 했다고 믿기 어려운 궤변이다.
모미이 회장은 일본 정치권에서 해임론이 나오는 등 파문이 커지자 “개인적인 의견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때 “회장이라는 직분을 잠시 접어 놓겠다”고 말한 자체가 NHK 회장으로서 적절한 발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게 NHK를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