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시집 ‘체 게바라 만세’ 낸 시인 박정대“내 시가 낭만주의라고? NO! 현실을 무시한 꿈은 현혹일 뿐”시인 강정-리산과 함께 밴드 결성… “함께 참여한 이 책은 첫 문자 콘서트”
박정대 시인이 매주 최소 한 번씩은 꼭 찾는 서울 홍익대 앞 뮤직바 코케인. 창가에 앉아 밤이 깊도록 시를 쓴다. 그는 오랑캐들이 꿈꾸는 세상을 기다린다. 변방을 떠도는 사람들, 제도권에 들지 못하는 이들이 오랑캐다. “세상은 인정하지 않아도 오랑캐들끼리는 당당하고 행복하거든.”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시인은 깊숙한 내면을 유랑한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이 만난다고 생각한다. 최근 나온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체 게바라 만세’(실천문학사)는 리듬감 넘치지만 고독한 방랑의 길, 베일을 드리운 환상 속으로 건너오라는 손짓이다.
‘나는 아직도 지상에 발 딛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 존재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인간이 되고 싶은 날은 천사의 외투를 빌려 입고 시를 쓴다//나는 오직 시에서 인류의 희망과 미래를 본다’(‘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는 밝은 대낮에는 충실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퇴근하는 그 순간 ‘나는 글 쓰는 사람이고 시인이다’라는 자의식을 충전시킨다. 일찍 저녁을 먹고 잠들었다가 밤 11시에 일어난다. 온전한 시인의 삶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음악을 듣다가 발동이 걸리는 새벽 서너 시에 시를 쓴다. 글을 쓰다가 고개를 들면 시계가 오전 7시를 가리킬 때도 더러 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스스로 시인임을 의식하지 않으면, 예술가적 감수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평범한 시민이 될 뿐이다. 내가 헌신하는 예술적 시간을 위해서 그 나머지를 희생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한다.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시집 제목을 체 게바라 만세로 하자고 했더니 사람들이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3년 전에 낸 시집 ‘삶이라는 직업’(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언제나 무엇인가 남아있다’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2007년 시집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뿔)에도 원래는 ‘체 게바라 만세’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고 했다.
“내게 게바라는 좌파와 우파의 개념 위에 놓이는 인물이 아니다. 나는 사람과 비(非)사람으로 구분한다. 게바라는 사람 쪽에서 괜찮은 사람에 속한다. 나에게 혁명은? 담배를 맛있게 피울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본질적으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 혁명이다.”
27일 저녁 시인을 만난 곳은 서울 홍익대 앞 뮤직바 코케인이었다. ‘어느 날은 문득 2층 창가에 앉아 밤의 첨예한 풍경을 보기도 한다’(‘애도 일기’)의 그곳이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흑맥주, 체 게바라가 그려진 지포 라이터. 시인은 시집의 녹색 속지에 ‘혁명적 인간이 시를 쓰고 공연을 합니다’라고 녹색 글씨로 적어 넣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