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소설가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고등학교 동창이 주선한 소개팅에 나간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뒤로 마주 앉아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한 여자는 올해 환갑을 맞은 그의 어머니가 유일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암만 집구석에 처박혀 있다 해도 머리도 감고 세수도 좀 하고 그래라.” “시험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뭐 한다고 맨날 그렇게 새벽까지 불 켜 놓고 있어? 전기세는 뭐 나라에서 공짜로 내주는 줄 알아?” “환갑 넘긴 네 아버지도 저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택시 모느라 고생하는데….”
그런 와중에 그의 휴대전화로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채현종 사장님 핸드폰 맞지요?” 그것은 명백히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그의 낡은 폴더형 휴대전화는 지난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연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에 보내드린 우편물 보셨어요? 짧게라도 시간을 내주시면 제가 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냥했고 친절했으며, 또 조금 간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창문 밖을 무연히 바라보다가 “그럼, 만나서 얘기하시죠, 뭐”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에게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또 한편 누군가가 못 견디게 그립기도 했다. 그는 어쩐지 조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막 돌아서려고 했을 때, 여자가 휴대전화를 들고 커피숍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래, 철민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오늘 중요한 약속 때문에 그랬어.” 여자는 커피숍 반대편 대로를 바라보면서 통화를 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엄마가 다음엔 학교에 꼭 갈게. 진짜야. 응응, 그래 약속할게.” 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쉽게 커피숍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몇 번 하늘을 쳐다보았고, 멀거니 통유리 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백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기 시작했다. 그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의 마음과 싸워야만 했다. 그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 후,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그녀에게 다가가 더듬더듬,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