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이대로는 안된다/2부 개혁 가로막는 ‘3대 암’]<3·끝>방만경영 못 가려내는 성과평가
한 공공기관의 고위 간부 A 씨는 정부 경영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평가 준비는 공공기관의 한 해 ‘최대 농사’여서 해당 기관 핵심 자원의 많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평가위원들이 결정되면 그때부터 모든 ‘연’과 ‘끈’을 동원해 누가 우리 기관의 평가를 맡게 될지, 맡은 사람의 고향과 출신 학교는 어디인지 파악하고 챙기기 시작합니다. 평가 준비란 게 결국 보고서 작성과 정보 수집, 그리고 ‘줄 대기’가 핵심이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그리고 6개월 이상 재직한 기관장들은 매년 봄만 되면 정부로부터 경영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엔 111개 공공기관, 100명의 기관장이 평가 대상이었다.
대개 경영학이나 행정학 전공 교수들로 이뤄진 평가단은 경영실적, 리더십 등을 체크해 6개 등급(S 및 A∼E)으로 나눈다. 이 등급이 나쁘면 기관장이 잘리거나 직원들의 성과급이 대폭 깎이기 때문에 경영진이든 노조든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온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방만경영 실태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하겠다고 선언한 터라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평가에 목을 매다 보니 웬만한 공공기관은 아예 전담팀을 꾸린다. 인원은 10명 안팎에서 많게는 30∼40명. 가장 유능한 엘리트가 차출되다 보니 평가 기간에는 현업 부서의 업무 차질이 극심하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조직 안에서는 평가 준비가 모든 업무에 우선하는 분위기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성과급이 걸려 있다 보니 평가팀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직원들이 일심동체가 돼 전사적으로 도와준다”며 “평가 준비를 총괄하는 팀장 자리는 ‘핵심 요직’이고 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 여부도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비용 투입도 엄청나다. 기관들은 보고서 작성법, 면접 요령 등을 외부 컨설팅 기관에 자문한다. 이런 자문료와 직원들의 인건비, 정보 수집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모두 계산하면 기관당 매년 수십억 원을 평가 준비에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평가 교수와 공공기관 간 유착 의혹도
평가를 맡은 교수들에 대한 로비전도 치열하다. 정부는 실사가 개시될 때까지 각 기관에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거의 소용이 없다. 공공기관들은 자기 기관을 담당한 위원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취향과 인맥 등을 미리 철저히 파악해 둔다. 그러고는 집이든 학교든 찾아가 ‘밀착 마크’를 한다.
‘갑을(甲乙) 관계’인 교수들과 공공기관 간에 일부 부적절한 ‘거래’가 이뤄진다는 증언도 나온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는 산하 공공기관들이 경영평가단 교수 20여 명에게 연구용역과 특강 비용 등으로 총 9억여 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교수들의 전문성도 도마에 오른다. 경영평가단으로 활동하는 한 교수는 “평가에 참여해 보면 기관들의 문제점을 찾아낼 생각은 안 하고 덕담만 하고 엉뚱한 질문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갑’ 행세를 해보기 위해 평가위원을 시켜 달라고 국회의원을 통해 정부에 압력성 민원을 넣는 교수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좀 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공공기관들이 평가에서 매년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커서 계속 1년 뒤만 내다보고 일을 하게 된다”며 “평가 주기를 더 길게 하고 지표도 계량평가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