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기자
이현세 등 중견 만화가 19명이 참여한 이 기획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만화와 애니메이션 25편이 선보였다.
일본의 극우 단체와 일부 극우 만화가는 개막 전날까지도 앙굴렘 조직위에 전화와 e메일로 기획전 취소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일본 정부도 프랑스 주재 일본 대사관을 통해 “한국 기획전을 재고해 달라”며 앙굴렘 조직위를 압박했다.
하지만 프랑크 봉두 조직위원장은 30일 이례적으로 한국과의 공동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파리에서 한국만 따로 목소리를 내기보다 앙굴렘에서 우리와 함께 목소리를 내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봉두 위원장은 또 “위안부 기획전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가 진화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기획전이 열리는 동안에도 일본의 방해 공작은 이어졌다. 일본의 한 출판사는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가 앙굴렘 조직위에 의해 철거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의 힘은 컸다. 기획전에는 나흘 동안 2만 명 가까운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시관에는 위안부 할머니에게 보내는 글을 적어 붙이는 ‘소원의 벽’이 마련됐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더 붙일 곳이 없을 정도로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각국 언어로 쓰인 응원 메시지들이 가득 찼다. “당신의 상처와 아픔은 나의 상처와 아픔입니다.”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용기를 내 줘서 고맙습니다.”
이번 ‘지지 않는 꽃’은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는 만화의 힘, 문화 콘텐츠의 힘을 새삼 일깨워 줬다. 하지만 앙굴렘은 시작일 뿐이다. ‘소원의 벽’에 붙은 한 응원의 글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끝내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