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1945∼)
양떼 따라 나선 길
풍경도 바람도 바뀌지 않는다,
뒤처진 채 지친 다리 끌고
머뭇머뭇 구릉을 내려가다
구멍 뚫린 화강암 괴석을 들여다본다,
고비 처녀는 내게 원시인 같은
녹색돌 하나를 떨어뜨리고 내닫는다
“양떼를 놓치지 말아요”
모래바람이 갈기를 세운다
유목민도 수행자도 아니면서
나는 왜 사막에 있는가,
방랑기를 재우려고?
영혼의 갈증을 채우려고?
고비 사막처럼 처절하게 견디려고?
무슨 소리, 양떼를 놓치지 말아야지
사막도 초원도 아닌 곳을
나는 절뚝절뚝 걷는다,
양떼는 구물구물 흘러가고
신대철 시집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에서 옮겼다. 시집의 주 배경은 겨울 협곡, 북극, 고비 사막 등 문명세계와 격절된 공간이다. 시인은 왜 겨울의 극지에 이끌리고, 사막에 찾아든 걸까. 몸담고 있는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느낄 때가 있다. 인간사 일반, 혹은 인간관계에 염증이 일어난다거나 외로울 시간이 없어서 너무 외롭다는 등의 이유로. 말하자면 사람멀미인데, 가장 쉬운 탈주 방법은 모든 연락을 끊고 집에 틀어박히는 거다. 그러나 ‘영혼의 갈증’이 극렬하면 몸이 밖으로 내몰린다. ‘나에게서 얼음사막으로 내몰리는/저 사람, 내 몸 입고 내 말 흉내 내던/저 사람, 내 길 가고 내 꿈꾸던/악몽 속의 얼굴들 멀어지고 그리워지고 아주 지워진다’(시 ‘오로라’에서)
시인이 깨지 못하는 악몽들은 아직 그 여진 속에 있는 우리나라 근대사와 맞물린, 시인의 유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 체험이다. 사람이 외롭게, 들꽃처럼 스러지는 순간을 가슴 아릿하게 생생히 잡은 시편들이 시집에 담겨 있다. 그 충격과 동요와 애도의 감정이 고드름처럼 시인의 가슴 속에서 영영 녹지 않고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눈사람처럼 통렬한 고독 속에 사는 것이다. 하지만 ‘양떼를 놓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인간사회의 끈인 양떼를 절뚝절뚝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