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퇴임 후 2년 반이 지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그는 1시간 30분 동안의 인터뷰 내내 최근 통계들을 줄줄 꿰며 나라 경제를 걱정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윤경제연구소’ 집무실에서 만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관 재임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억지로 꾸미는 걸 싫어했다. 그는 투자 활성화와 관련해 “장관이 기업인을 업어준다거나 투자를 종용한다고 해서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다”며 “기회를 열어주면 자연스럽게 기업이 돈줄을 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퇴임 후 2년 반이 넘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나도록 하는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하는데, 이건 착각이다. 기업이 인건비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건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
―경제성장과 관련해 재임 시절 서비스산업 육성을 특히 강조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투자는 기업인을 업어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기업이 왜 투자를 안 하는지 물어보라. 투자할 데가 없어서 투자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보건의료, 관광, 교육, 소프트웨어 등 투자수요가 많은 산업이 일부 계층의 반대에 꽉 막혀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건 인류의 영원한 욕망이다. 의료서비스산업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우수한 인력이 쏠려 있는 이 분야의 규제를 풀면 ‘보건의료 분야의 삼성전자’를 만들 수 있다.”
“경쟁을 통한 기술발전으로 개인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경쟁을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한 점이 문제다. 모두가 하향 평준화하려는 것 같다.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배달부가 됐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 공공부문을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는데 민영화보다 더 효과적인 개혁방안이 있는지 정부에 되묻고 싶다.”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근본 원인이 뭐라고 보나.
“결국 사람의 문제다. 인재(人災)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경제팀 수장인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리더십 논란이 계속되는데….
―노무현 정부 때는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 때는 기재부 장관을 지냈다. 성향이 다른 정부를 거치며 갈등은 없었나.
“노무현 정부 당시 분배에 치우친 386세대들과 대척점에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윤 장관이 고지식하게 경제원리에 집착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정무적 판단으로 타협만 한다면 항상 최선의 선택은 못하고 차선만 고르게 된다. 경제원리에 따라 선택하는 정책의 양을 최대한으로 늘리려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신념으로 일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일정 지위 이상 오르지 못하는 ‘유리 천장’이 여전하다고 보는지….
“그렇지 않다.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의 성적이 월등하다. 월급이 아내 통장으로 자동으로 입금되는 나라가 한국 말고 세계 어디에 있나. 한국은 이미 남자가 사회의 경쟁에서 밀리고 가정의 주도권도 여성으로 넘어갔다. 농담이지만 ‘여성부’가 아니라 ‘남성부’가 필요한 상황이다(웃음).”
―관료로 복귀할 생각은 없나.
“전혀 없다. 퇴임 후 5가지 질병으로 고생했고 지금도 2가지 진료를 받고 있다. 장관 일은 중노동이다. 창살 없는 감옥생활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지인들에게도 여생을 행복하게 살 생각만 하라고 조언한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