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군 고위 관계자가 탄식하듯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조만간 현실로 닥칠 텐데 우리 군은 ‘미국 MD 참여 불가’를 고수하면서 허술한 대비로 화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핵무기 개발 과정을 볼 때 북한은 이미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을 것”이라며 “핵미사일 실전배치 선언만 남은 셈”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을 포함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도발 시나리오’의 완성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게 그의 냉정한 평가였다.
지난달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새누리당 의원)이 주관한 북핵 세미나에서도 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 최봉완 한남대 교수가 공개한 북한의 핵공격 시뮬레이션 결과는 섬뜩할 만큼 충격적이다. 1t 규모의 핵탄두를 탑재한 북한의 노동미사일은 발사 10여 분 만에 서울 상공에 도달하지만 우리 군은 이를 요격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더 높은 고도에서 여러 차례 요격할 수 있는 방어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부터 제기됐다. 그때마다 군 당국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MD 참여로 해석될 수 있는 무기는 도입해선 안 된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측면이 컸다.
실제로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SM-3 미사일과 같은 상층 요격무기의 도입을 미국 MD 참여라고 확대 해석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은 체제유지를 위한 대미(對美) 협상수단이지 같은 민족을 겨냥한 무기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부응하듯 군은 “MD에 참여할 능력도 계획도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며 관련 무기의 도입설을 일축하기에 급급했다.
2000년대 초 차기유도무기(SAM-X) 사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신형 패트리엇(PAC-3) 미사일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군은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중고 기종(PAC-2) 구매를 강행했다. 그때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PAC-3 도입=미국 MD 참여’라는 좌파 성향의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억지 주장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 채 ‘벼랑 끝 상황’에 내몰리는 지경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의 안이한 핵미사일 방어태세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여실히 증명된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핵보유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과 이스라엘도 이중삼중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 핵위협에 대응해 PAC-3와 SM-3 미사일로 다층요격체계를 구축한 지 오래다. 국방예산이 한국의 3분이 1 수준인 대만도 지난해 PAC-3 미사일을 도입해 운용 중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북한 핵위협의 인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