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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전문기자의 안보포커스]미국 MD 참여 논란에 발목 잡힌 북핵방어태세

입력 | 2014-02-05 03:00:00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언제까지 미국 미사일방어(MD) 체제 편입 논란에 휘둘려 허송세월만 할 건지….”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군 고위 관계자가 탄식하듯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조만간 현실로 닥칠 텐데 우리 군은 ‘미국 MD 참여 불가’를 고수하면서 허술한 대비로 화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핵무기 개발 과정을 볼 때 북한은 이미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을 것”이라며 “핵미사일 실전배치 선언만 남은 셈”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을 포함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도발 시나리오’의 완성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게 그의 냉정한 평가였다.

지난달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새누리당 의원)이 주관한 북핵 세미나에서도 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 최봉완 한남대 교수가 공개한 북한의 핵공격 시뮬레이션 결과는 섬뜩할 만큼 충격적이다. 1t 규모의 핵탄두를 탑재한 북한의 노동미사일은 발사 10여 분 만에 서울 상공에 도달하지만 우리 군은 이를 요격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군이 2020년대 초를 목표로 구축 중인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는 노동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시간이 단 1초뿐이고, 정확히 맞히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요격 가능고도가 15km에 불과한 KAMD와 같은 하층방어체계는 음속의 6∼7배로 낙하하는 핵미사일 공격에 거의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이 미사일의 발사각을 조정해 쏴 올리면 한반도 전역에 핵공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전 포착이 힘든 이동식발사대(TEL)를 이용할 경우 사실상 대응카드가 없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 교수와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고고도 지역방어체계(THAAD)나 SM-3 미사일과 같은 상층 요격수단을 도입해 다층방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더 높은 고도에서 여러 차례 요격할 수 있는 방어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부터 제기됐다. 그때마다 군 당국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MD 참여로 해석될 수 있는 무기는 도입해선 안 된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측면이 컸다.

실제로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SM-3 미사일과 같은 상층 요격무기의 도입을 미국 MD 참여라고 확대 해석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은 체제유지를 위한 대미(對美) 협상수단이지 같은 민족을 겨냥한 무기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부응하듯 군은 “MD에 참여할 능력도 계획도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며 관련 무기의 도입설을 일축하기에 급급했다.

2000년대 초 차기유도무기(SAM-X) 사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신형 패트리엇(PAC-3) 미사일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군은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중고 기종(PAC-2) 구매를 강행했다. 그때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PAC-3 도입=미국 MD 참여’라는 좌파 성향의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억지 주장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 채 ‘벼랑 끝 상황’에 내몰리는 지경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의 안이한 핵미사일 방어태세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여실히 증명된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핵보유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과 이스라엘도 이중삼중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 핵위협에 대응해 PAC-3와 SM-3 미사일로 다층요격체계를 구축한 지 오래다. 국방예산이 한국의 3분이 1 수준인 대만도 지난해 PAC-3 미사일을 도입해 운용 중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북한 핵위협의 인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MD 편입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반복하며 효용성이 의문시되는 북핵 방어시스템을 고집하는 우를 더는 범해선 안 된다고 본다. 정부와 군은 이제라도 북핵 위협의 실상을 직시하고, KAMD의 한계와 문제점을 냉철히 따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실전배치되는 그때 가서 돌이키기엔 후과가 너무 크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