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매장 확장이전한 토미 힐피거 디자이너
반듯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는 이른바 모범생 스타일 패션은 감각적이지는 않지만 언제, 어디서나 잘 어울린다는 것이 장점이다. 평소 과감한 스타일에 도전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종종 모범생 스타일로 ‘변신’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특히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연출하기도 쉽다. 흰색이나 줄무늬 셔츠 위에 카디건 혹은 재킷을 걸치고, 하의로는 면바지를 입기만 하면 된다.
최근 열린 ‘2014 봄여름 패션쇼’에서 모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토미 힐피거(사진 가운데). SK네트웍스 제공
‘토미 힐피거’는 프레피 룩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디자이너 토미 힐피거(63·사진)가 1985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내년이면 브랜드가 선을 보인 지 만 30년이 된다. 그동안 수많은 패션 스타일이 우리 곁에서 명멸했지만 아직도 프레피 룩의 인기는 여전하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미 힐피거의 최신 제품과 트렌드를 선보이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직영매장이 지난달 17일 신사동 가로수길로 확장 이전했다. 새 매장은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 등 세계 7곳의 거점 점포(플래그십 스토어)와 똑같은 외관 디자인으로 지어졌다.
토미 힐피거는 프레피 룩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프레피 룩의 인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동아일보 A style이 디자이너 토미 힐피거를 단독으로 e메일 인터뷰했다. 그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2005년 브랜드 설립 20주년 기념과 서울 패션위크 참가차 내한한 이후 처음이다. 토미 힐피거는 미국 뉴욕에서 10일(현지 시간) 열리는 패션쇼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토미 힐피거 직영매장의 이전 개관 기념식이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프레드 게링 최고경영자(CEO·왼쪽)와 차기 CEO로 내정된 대니얼 그리더 씨(토미 힐피거 유럽지역 대표)가 매장 2층 신사복(테일러드) 코너에서 재킷을 살펴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0일 뉴욕 파크애버뉴 아모리홀에서 열리는 ‘2014 토미 힐피거 가을겨울 패션쇼’ 준비로 정신이 없다. 사무실에 있지 않을 때는 아내와 7명의 자녀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늘 붐비고 시끄럽지만 재미있다.”
―지난달 압구정동 직영매장을 신사동 가로수길로 옮겼다. 특히 가로수길로 매장을 옮긴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
“가로수길은 서울의 패션과 예술, 음식, 문화 등으로 유명한 곳 중 하나로 알고 있다. 멋지고(Hip) 기발한(Quirky) 분위기는 마치 뉴욕의 ‘소호(SOHO·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패션 거리)’를 연상케 한다.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에 있는 세계적인 매장과도 어울릴 것 같다.”
―브랜드 ‘토미 힐피거’로 대표되는 프레피 룩은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 학생 스타일이다. 서양, 특히 미국의 감성이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서도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토미 힐피거는 1969년 18세의 나이에 ‘피플스 플레이스(People's Place)’라는 의상실을 내면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남성복 브랜드를 내놓았다.
그의 목표는 줄무늬 셔츠와 니트 스웨터, 면바지 등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과 편안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프레피 스타일 의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셔츠 깃 뒷부분에 색을 넣어 깃을 접어 입을 때와 세울 때 각각 다른 느낌이 나도록 하는 등 힐피거만의 ‘DNA’를 옷에 심어왔다. 남성복으로 시작해 8∼20세를 겨냥한 ‘토미 힐피거 보이스’(1993년), 남성 청바지 브랜드 ‘토미 진스’(1995년), 여성복 ‘토미 힐피거 위민스’(1996년) 등을 차례로 내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자라, 유니클로 등 세계 유명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의 각축장이 된 한국 패션 시장에 대해 그는 “패션뿐 아니라 음악, 문화 등 최신 유행을 파악할 수 있는 시장으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패션 시장은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 됐다”고 말했다.
디자인과 경영을 동시에 해오던 토미 힐피거는 2010년 세계적인 의류 회사인 ‘필립스반호이젠(PVH)’이 토미 힐피거 브랜드를 30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경영에서 손을 떼고 디자인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프레피 룩은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아 “정형화됐다”는 얘기도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프레피 룩과 브랜드 ‘토미 힐피거’의 미래는 무엇인가.
“편안함 속에서 새롭고 비틀어진(Twist) 감성을 담는 것이 내 목표다. 전통은 지키되 그 안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프레피 룩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비틀어진’ 감성을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재킷이나 청바지, 셔츠 등 구조적이고 깔끔한 의상에 ‘팝(Pop)’적인 독특한 세부 장식이나 재미있는 디자인 요소를 넣는 것을 좋아한다. 셔츠 깃 뒷부분에 색을 넣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기본 의상에 독특한 스타일을 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캐주얼 男정장-발랄한 여성복, 파리-뉴욕같네 ▼
가로수길 새 매장 직접 살펴보니
캐주얼 의류 위주였던 토미 힐피거 브랜드는 올해 봄·여름 의상부터 본격적으로 정장, 와이셔츠 등 신사복을 내놓았다. 그 전에는 외부 업체에 제작을 맡겨 신사복을 만들었지만 올해부터는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신사복 코너를 따로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가로수길 직영 매장이 처음이다.
토미 힐피거의 신사복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의 젊은 직장 남성이 주요 고객이다. 정장부터 셔츠, 재킷 등 신사복에서도 토미 힐피거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토미 힐피거의 DNA인 ‘프레피 룩’을 기본으로 했다. 하지만 채도나 디자인, 무늬 등 세부 사항에선 튀지 않는 수준의 디자인이다. 엄밀히 말하면 ‘캐주얼 정장’에 가까운 의상들이다. 특히 저지, 니트 등 신축성 있는 소재로 만들어 활동성을 강조했다. 토미 힐피거의 국내 수입사인 SK네트웍스는 가로수길 직영 매장을 시작으로 신사복을 주요 백화점 매장에 순차적으로 들여올 계획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17일 문을 연 토미 힐피거 직영매장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토미 힐피거 의류가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온 것은 2003년부터다. 여성복(2004년)과 아동복(2006년), 청바지 제품인 ‘토미 힐피거 데님’(2007년) 등이 차례로 소개됐다. 조준행 SK네트웍스 패션본부장은 “가로수길 직영 매장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의류 매장 그 이상”이라며 “세계 각지에 있는 거점 매장과 같은 디자인을 반영해 토미 힐피거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