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보는 시간 줄여 육체와 정신 활력 돋우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들어야공무원 긴 휴가 권장, 대통령부터 모범 보이길… 공직자 골프금지는 기본권 침해혼자 보낸 설 연휴… 지만 씨 부부도 청와대 못 들어가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여름휴가 때 청와대 별장이 있는 경남 거제의 저도에 4박 5일 일정으로 내려갔다가 하루만 쉬고 온 것이 전부다. 바닷가 모래 위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쓰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부모님과 함께 찾았던 저도의 추억을 뜻하는 것이리라. 휴가나 명절 연휴도 가족과 오붓하게 보내거나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즐길 때 재밌지, 혼자 보내는 휴가는 쓸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설 연휴에도 청와대에서 특별한 일정 없이 보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오랜 세월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동생 지만 씨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둘째 아들을 낳았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대를 이은 조카 세현이를 무척 귀여워하지만 동생 부부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하는 운동은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스트레칭과 요가. 모두 혼자 하는 운동이다. 골프채는 잡아본 적이 없고 탁구도 옛날에는 했지만 지금은 안 한다. 숲길을 걸으며 야생화를 관찰하는 취미가 있었지만 청와대에 들어온 뒤에는 경호가 번거로워져 이것도 쉽지 않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매년 호사스러운 휴가를 보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그의 정적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를 자주 치고 연주회와 최신 영화를 백악관에서 감상하고 야구 경기를 보느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일을 가장 적게 한다고 비난한다. 에어포스 원(공군 1호기)이 뜨고 경호비용까지 합하면 대통령의 휴가에 몇백만 달러가 들어간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첫 임기에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로버트 기브스는 육체적 정서적인 ‘배터리 재충전(recharging battery)’이라고 변호했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의 골프장 금족령(禁足令)을 해제해 달라는 주변의 건의에 “골프할 시간이 있나요”라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골프는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한 라운드에 4시간 이상이 소요돼 시간 낭비적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벽부터 저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장차관들이 주말에 자기 돈 내고 잔디밭에 나가 흰 공과 함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것을 시간 대비 효율 측면에서만 따질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무원들이 여가시간의 운동까지 제약을 받는 것은 조금 심각하게 말하면 헌법적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런 걸 위헌 결정 안 하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재래시장에서 물건 사주고 사진 찍는 것만이 서민경제를 살리는 길은 아니다. 캐디를 비롯해 골프장에서 먹고사는 서민도 많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여배우와 밀회하랴, 동거녀 정리하랴, 사생활이 너무 어지럽다. 우리 박 대통령은 사생활이 너무 단출해서 걱정이다. 대통령도 시간의 여백 속에서 취미생활도 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국정의 큰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일을 잠시 멈추고 가까운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동안에 의식은 일을 떠나 있지만 무의식은 하던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바쁘게 돌아간다. 가벼운 휴식이나 산보, 운동은 육체 및 정신건강에 좋고 무의식의 뇌가 작동하는 생산적인 시간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