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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결핍의 힘

입력 | 2014-02-06 03:00:00


영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참다못해 “공부 좀 하라”고 다그쳤다. 중학생인 아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공부는 왜 하는데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얼떨결에 “그야 나중에 너 잘살라고 하라는 거지”라고 했더니 아들이 그것 보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 집에 이렇게 돈이 많은데 뭐 하러 공부해요? 이거 다 제가 물려받을 건데요.”

하나뿐인 아들이니 전 재산 상속이 틀린 말도 아니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부자병’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영어로는 ‘어플루엔자(affluenza)’로서 ‘부유하다’는 어플루언트(affluent)와 ‘독감’이라는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 병에 걸리면 삶에 대한 무력감과 스트레스, 쇼핑중독, 감정통제 불능의 상태를 보인다니 쉽게 말하면 ‘호강병’이다.

호강에 겨운 병이라니. 우리 같은 서민은 차라리 부럽다는 푸념이 나올 법하지만 어떤 병이든 병에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미국에서 16세의 부잣집 소년이 훔친 자동차로 사람을 치어 죽였는데 법원에서 ‘어플루엔자’ 판결을 받고 병원치료를 받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만큼 아주 몹쓸 심각한 병인 것이다.

사진가인 나의 남편은 대학시절 한동안 카메라 없이 사진학과에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공부가 되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친구들이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가 없으니 셔터를 누르는 대신 대상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궁리 끝에 원하는 이미지가 구상되면 나중에 친구의 카메라를 빌려 촬영을 했다. 그러니 일단 카메라만 손에 들면 굶주린 사자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40년 동안 열성적으로 작업하여 사진집 ‘시대의 기억’을 내면서 그는 자신을 지탱해준 힘은 결핍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카메라와 필름을 살 돈조차 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험하고 고된 촬영에도 불평은커녕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결핍을 극복하면 힘이 되지만 풍요가 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넘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면 병이 되지만 모자란 것을 성실하게 채워 가면 더욱 단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세영 수필가